누가복음 16장에는 불의한 청지지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돈”과 관련된다. 불의한 청지기는 “직무반납” 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청지기는 일을 저지른다. 대단한 발상이다. 해고당하면, 무슨 일을 못하랴! 군대를 제대하면, 후임병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다. 졸업하면 옷까지 벗어준다. 책도 물려준다. 졸업과 해고는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상속은 사망을 통해 개시된다. (민법 997조_상속은 사망으로 인하여 개시된다)
불의한 청지기는 뭔가 문제가 있었다. 주인이 “해고통보”를 하자, 노동청에 ‘부당해고’를 제기하거나, 주인에게 항변조차 못한다. 해고당일, 그는 채무자들을 따로 불러서, 그들의 빚을 탕감했다. 오!! 이 아름다운 소식이여!! 불의한 청지기가 마지막 순간에 주인의 이름으로 마을주민의 빚을 과감히 없애줬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는데, 재물 자체는 불의하다. 불법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 아니다. 의롭지 못한 돈을 가지고 의로운 일을 하라는 뜻이다. 돈은 죽으면, 자기 것이 아니다. 빌려준 돈을 받지 않는 것도 ‘복음’이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비웃었다.
우리는 이 설교를 하는 배경을 주의깊게 살펴야한다. 잠언4:20에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했듯이,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그 상황을 주의깊게 살펴야한다.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하고 있는가? 15장 1절에 배경이 나온다. 설교를 듣는 대상은 ‘모든 세리와 죄인’이다.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했다. 그러므로, 불의한 청지기는 ‘세리와 죄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들에게 실제로 ‘채무’를 탕감할 권한이 있으니, 그렇게 하라고 권면했다. 오!! 주님의 설교는 현실적이며, 직접적이다. 삭개오도 그날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를 갚겠다”고 약속했다. (누가복음 15장과 16장은 19장의 삭개오 등장을 예고한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눅16:14)
현대인은 모두 바리새인들이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돈을 싫어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밥을 싫어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면 죽어야한다. 대인공포증(對人恐怖症)이 있지만, 그런 환자도 친한 사람은 좋아한다. 그처럼, 모든 사람은 돈을 좋아한다. 주님께서 “돈을 싫어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린 ‘부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했다.
삭개오는 분명히 ‘자색옷을 입은 부자’였으나, 그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드렸고, 거지 나사로처럼 지나가는 주님을 집안으로 영접했다. 16장에 나오는 자색옷을 입은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문전박대했다.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청년도 주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부자청년도 자색옷을 입은 부자와 같아서,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듯 천국에 가기가 어렵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4명의 부자가 있는데, 그 중에서 삭개오와 아리마대 부자 요셉은 주님을 영접했다. 돈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이 천국에 갈 확률은 50%는 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