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의 100년’은 부끄러운 100년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과거의 우리에게 무엇이었으며, 또한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인가? 창간 100주년을 맞는 두 신문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국민들이 다시 묻고 있다. 특히 100주년이라는 역사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행태를 보면서 다시 분노하고 있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죄과를 반성하고 참회면서 국민 앞에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그 수치스런 역사를 감히 내세우다니..’하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반응이다. 이들 두 신문사에서 자유언론실천투쟁을 벌이다 독재권력과 야합한 회사측에 의해 무자비하게 거리로 쫓겨난 우리는 자유언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던 우리의 당초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조선-동아의 역사적 죄업을 바꿔놓지도 못한 것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조선-동아의 부끄러운 역사를 규탄하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조선-동아 사옥 앞에서 1월 15일 오늘부터 1인 시위를 시작하려고 한다. 언론의 회개를 촉구하는 이 역사적 운동의 현장에 뜻을 함께 하는 국민들이 많이 참여하시기를 요청한다.
100년이 지나도록 부끄러운 자신의 역사에 눈을 감고 한 번도 반성할 줄 모른다면 늦었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100년 만에 지금이라도 그 더러운 역사를 햇빛 속에 다시 드러내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1인 시위를 시작하는 우리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100년 만에 한국의 언론계 전체가 우리 언론의 역사 전체를 돌아보고 성찰하여 과거의 욕된 유산을 청산하고 바로잡아 진실한 진짜 언론을 건설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적 요청 때문에 우리들은 이렇게 나서게 됐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00년은 자랑스러운 100년이 아니라 부끄러운 100년이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잘 한 일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수많은 역사적인 기록들은 그 압도적인 행위가 부끄러운 과오로 더럽혀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사적인 계기’에 ‘결정적으로 선택한 보도행위’가 ‘반민족적’, ‘반민주적’ 과오였다.
일제강점기 최악의 암흑기에 우리 민중이 압제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두 신문은 해마다(1937-1940) 1월 1일이 되면 1면 머리에 일왕부처의 사진을 크게 싣고 충성을 맹세했으며, 일왕의 생일 때도, 일본의 건국기념일에도 일왕의 ‘성덕’을 기리며 ‘극충극성’(克忠克誠)을 맹세했다. 일제가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조선에서 지원병제도를 실시하자 두 신문은 이를 지지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모는 데 앞장섰다. 조선일보는 이 지원병제도를 가리켜 “내선일체가 실현된 획기적인 사건” 이라 하면서 ”누가 감격치 아니하며 감사치 않으랴“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1932년 1월 한인애국단원 이봉창 의사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를 ’대불경사건(大不敬事件)이라 부르고 이 의사를 대역죄인(大逆罪人)이라고 썼으며, 조선일보는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 공원에서 일왕생일에 폭탄을 던진 의거를 ’흉행‘ (凶行, 흉악한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독립 운동가들이 극도의 위험 속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1940년 「조광」(朝光, 조선일보의 월간지)은 한일합병에 대해 이렇게 썼다. “구 한국의 운명이 위급존망의 추(秋)에 당하였던 명치 43년 8월 22일 일한 양국은 드디어 양국의 행복과 동양 영원의 평화를 위하여 양국 병합조약을 체결하고 그달 29일부터 이것을 공표 실시하였다… 데라우치寺內 총독은 조선통치의 대본을 정하여 창업의 토대를 쌓은 위대한 공적을 남겼거니와…”. 이 사례들은 고난 속의 우리 민족을 더 큰 파멸로 몰아간 두 신문의 친일 배신과 반역행위의 일부를 소개한 것이다. 그러면 민족이 해방된 후엔 이런 배신행위가 없어졌는가?
해방이 되자마자 미소 양국군의 남북분할점령으로 분단 위협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동아-조선의 분단 획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동아일보의 1945년 12월 27일자 모스크바 미-영-소 삼상회의 보도가 그랬다. 동아일보는 아직 회담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외상회의에서 논의된 조선 독립문제>라는 제목이 붙은 [워싱턴 25일 발 합동 지급보]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이 기사는 사실을 완전히 뒤집은 ’가짜뉴스‘였다. 회담장에서는 미국이 최고 5년의 신탁통치안을 주장한 반면 소련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 발표된 회담 결과는 1)한국을 독립국가로 재건하기 위해 임시적인 한국민주정부를 수립한다. 2)한국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3)미-영-소-중의 4개국이 공동관리하는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의 이 가짜뉴스는 한 순간에 남한 사회를 찬탁/반탁, 좌/우로 갈라놓는 계기가 되었다. 모스크바 삼상회담의 결과를 왜곡하여 친일세력을 반탁세력에 합류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에 대해서도 모략중상을 계속했다. 민족분단과 전쟁으로 가는 길을 열어놓는 데 동아일보가 주역이 됐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어떻게 행동했던가? 동아일보는 박정희의 10월 유신이 “평화 지향적이며 자유민주주의적인 것”이라 지지했으며, 박정희가 유신헌법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유신출범이 구국의 활로”라면서 “그의 영도에 일체감을 갖고 참여와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비상한 경우엔 비상한 조치를 필요로 한다”면서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로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지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창조적 새 역사의 문을 열고 유신행진의 힘찬 거보를 내디뎠다…그 선두에 선 박대통령에게 뜨거운 격려와 성원을 보낸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광주 민주항쟁에 나선 시민들을 ‘폭도’라고 불렀으며, 그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을 찬양하고 전두환이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에 그 사장이 직접 참여했다. 이런 기록들은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려 있는 시기에 언론이 독재에 저항하기는커녕 침묵조차 지키지 못했으며 침묵은커녕 독재기구의 일부로 스스로 편입되는 것도 사양치 않았다. 이런 배신행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작년 여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사건이 터졌을 때 한국의 신문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반민족적인 배신행위를 조선일보가 저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있은 후 우리 국민들이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안가기 운동을 통해 보여준 한결같은 애국행동은 눈물겨울 지경이다. 역사의 정의와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는 그 결연함과 정성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신문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기록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해방 후에도, 군사독재가 끝난 후에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사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기자들을 쫓아내는 것까지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일제시대엔 항일 기사를 쓴 기자들을 쫓아내더니 군사정권 때는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는 기자들을 쫓아냈다.
조선, 동아의 부끄러운 100년 역사는 오늘의 언론 종사자들에게 큰 경종을 울려 준다. 언론사와 언론인들은 언제나 ‘역사’를 의식하면서 언론을 제작하고 기사를 쓰며 주장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기록들은 그대로 역사로 남아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치에서 해방된 프랑스가 그토록 많은 부역 언론인들을 처벌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기록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자는 먼 훗날에도 자기 글에 대해 치욕을 느낄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각오로 기사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때때로 온 국민들의 운명,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100년의 부끄러운 언론 역사가 더 이상 되풀이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 동아가 대표하는 한국의 이른바 ‘주류언론’, 극우 수구언론들은 과거의 과오를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 공익을 위해 있다는 언론이 공익을 사익에 종속시키면서 자신의 기득권, 특권을 유지하고 확장시키기 위해 언론을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일제시대에도, 군사독재시대에도 언론이 범한 죄과들은 모두 이 기득권과 특권 때문에 저질러진 것이다.
이 나라의 언론이 해방 이후 오늘처럼 자발적으로 타락한 적이 없을 것이다. 언론이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높은 차원에서 정치를 감시하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언론이 자신의 특권을 지키고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언론을 ‘권력과 이권 획득의 수단’, ‘저열한 정치’의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극우 보수언론들이 어떤 정파의 대변지처럼 되어 있다고 규탄받는 이유이다.
“어제의 범죄를 묵인하는 것은 내일의 범죄를 조장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오늘의 언론이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은 바로 과거의 범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용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양심적인 언론인들과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들과 국민들의 힘밖에 없다. 이 운동에 국민들이 적극 참여해주실 것을 호소한다.
2020년 1월 15일
(조선. 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