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는 금융 전문가다. 경제관념이 탁월했다. 국가경제는 곧 세금이다. 마태복음 17장에 성전세, 22장에 세금문제가 나온다. 두 사건은 상당히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세금을 내야하나? 내지 말아야하나? 납세의무는 국민의 3대 의무다. 성전세와 로마세금 납부는 그 당시 기독교인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된다.
나는, 주민세 낸다. 성전세는 주민세다. 나는 월세도 낸다. 성전세가 곧 월세 개념이다. 내가 월세를 내지 않으면, 집주인에게 전화가 걸려올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독촉장이 날라온다. 성전세가 그렇고, 로마세금 징수가 그러했다. 조선시대에도 백성이 산적이 되는 이유가 군필납부 의무가 너무 가중되어서 그렇다. 공자도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라고 말했다. 세금을 낼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 그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마태는 왜 베드로와 물고기 사건을 기록했을까? 그 시대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세금납부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예수님이 하듯, 그렇게 하면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내는 성전세는 내지 않아도 되지만, 오해하지 않도록 내라는 것이다. 둘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내듯, 로마에 내야할 세금이 있다면 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7:24~27은 방점이 ‘물고기’에 있지 않고, ‘나와 너를 위하여’에 있다.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했는데, 그때 주님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한 베드로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17:26에 보면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못 보고, ‘먼저 오르는 물고기’에만 초점을 맞춰서 ‘베드로와 물고기’를 가르치는 것은 성경의 맥락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이다.
옛날에는 “물고기=사람”으로 해석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고기가 물론 사람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물고기는 물고기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NIV] My God will meet all your needs according to his glorious riches in Christ Jesus.
하나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성전세 미납문제를 해결하셨을 것이다. ‘가버나움에 이르니’라는 표현에서 이미 ‘갈릴리 호수’가 전제된다. 이는 마태복음 4:19 말씀처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그물을 버린 사건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누가복음 5:4에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다. 이곳이 갈릴리 호수이며, 그들은 그 호수를 ‘바다’라고 불렀다. 갈릴리는 충분히 크고 험난해서 ‘깊은 바다’였다.
마가복음 4장에서도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고 했다. 이 바다가 바로 갈릴리 호수다. 비유로서 세상 바다가 아니고, 실제 바다다. 한자로 “海”
비유를 설명하고, 그날밤에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출항했다. 갑자기 큰 광풍이 불었다. 주님께서 일어나서 바다에게 잠잠하라고 하니, 아주 잔잔해졌다. 가버나움에 나오는 바다는 갈릴리 호수를 말한다. 왜!! 무슨 근거로!! 바다를 ‘비유의 바다’로만 억지로 해석하는가!!
눈을 감고, 가버나움으로 가자!! 그곳은 바닷가다. 그때 예수님이 저기 보이는 바닷가를 보면서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세겔을 얻을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 베드로는 퍼뜩 알아듣고 바다로 달려가서 믿음으로 낚시를 했을 것이다. 바다낚시다. 왜 ‘돈 한세겔’을 동전으로만 해석하는가? ‘입을 열면 돈 한세겔을 얻는다’는 것이 비유일 수도 있다. 그 비유의 실체는 베드로가 풀지 않고 감췄으니 누구도 모를 뿐이다. 낚시를 했는데 비단잉어가 잡혀서 2세겔에 팔았다면 어쩌겠는가!! ‘바다’는 세상바다로 해석하면서, 왜 ‘돈 한세겔’은 비유로 볼 융통성이 없을까?
요한복음 21장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더니, 큰 물고기로 153마리를 잡았다. 실제 물고기다. 그 장소가 디베랴 호수(갈릴리 호수)로서 같은 장소다. 그때 주님은 잡아온 물고기를 ‘숯불구이’로 해서 잡수셨다. 잡은 물고기로 아침을 해결하시듯, 마태복음 17장에서도 잡은 물고기로 ‘성전세’를 해결하신 것이다. 또한 물고기가 입에 ‘한세겔’을 진짜 물고 있었다면, 오!!! 놀랍도다!!! 육체가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면, 까짓것 ‘입 큰 물고기’가 한세겔을 물고 있었음을 믿자!! 나는 믿는다. 믿으니, 믿어진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내야할 돈이 있다면, 알바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때론, 바울도 천막 꿀알바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