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일까? 시편 23편도 자주 헤깔린다. 구구단 암기도 가끔 겁난다. 그래서, 나는 짧은 성경구절을 암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읽다보면, 내 집은 산이요, 들판이요, 다윗이 숨었던 은신처 엔게디 광야다. 또한 몇평 골방이다. (A4에 적어서, 벽에 붙여서 계속 읽고, 읽는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시편25편)
여러번 읽다가, 세 부분이 서로 연결해서 암송하면, 어찌나 행복하던지요. 이것은 ‘꿀맛’이다. 살아보니, 기쁨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기억의 그림자가 나를 따름은 주의 은혜로다.
의심많은 도마는 뒤늦게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입니다”(요20:28)라고 고백했다. 곧, 시편25편에 나오는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와 같은 고백이다. 작가는 ‘작품’을 낳는다. 작품은 작가와 같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하셨으니,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말씀이 이 땅에 오셨으니,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태초의 하나님이 낳은 말씀의 본체다. 작품을 읽은 자는 작가의 마음을 읽은 것과 같고, 사람의 얼굴을 본 자는 그 마음을 보는 것과 같아서,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얼굴이요, 본체요, 사랑이다. 그래서, 도마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했고, 믿고, 섬겼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이름’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섬겼으니, 유일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실제 내려왔음을 믿은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걸어서 왔듯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걸어 왔듯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태어나서 나타나셨다. 시편25편 암송한 부분을 암송하면서, 잠시 산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