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6:48 어제 떡을 오늘 먹고 있다. 어제 산 것이 아니다. 오늘 샀다. 집에 와서 보니 어제 떡이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함이 없다. 내가 자주 가는 고스란 떡집은 6시 즈음 새 떡이 나오는데, 내가 일찍 간 것인지, 그들이 게으른 것인지, 어제 떡을 팔았다. 살 때, 느낌은 있었다. 차다. 그러나, 10분을 더 기다리기엔, 새벽이 춥다. 드라마를 다운로드하는 것이 참지 못해서 나는 다운로드 중에 영상을 튼다. 조급증은 인내의 대적자인가? 행동력의 조력자인가? 3천원을 줬더니, 학이 새겨진 동전을 줬다. 떡집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베지밀A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밤샘하다 지친 점원은 곰처럼 겨울잠을 자다가 내가 문을 열자 몹시 무섭게 일어났다. 나는 마스크를 썼으니 표정은 포카 페이스다. 코로나19 덕분에 얼굴을 숨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여자들은 화장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는데, 식사할 때는 벗어야할텐데…. 따뜻한 음료가 보관된 곳, 문을 열었더니 윗칸에 내가 즐겨 마시는 베지밀이 있었고, 2+1이 붙어 있었다. 젠장, 1+1이 아니고, 왜 2+1이냐? 3병? 나는 떡값보다 100원 비싼 가격을 주고 베지밀 3병을 샀다. 공짜는 언제나 구매력을 높인다. 내가 증인이다. 오늘 구매한 어제 떡을 베지밀과 함께 먹으면서, 글을 쓴다. 물방울 소리가 그릇속에 첨벙 떨어지고 있다.
나는 제목을 ‘둘째날, 어제 떡을 오늘 먹는다’라고 기록했다. 날짜를 쓰기 보다는 ‘둘째날’이 더 나을 듯 싶다. 30일간 일기쓰기 에세이집을 출간할 계획인데, 작심삼일(作心三日)되면 안될텐데…. 사자성어를 쓰니, 사자성어집을 사고 싶어졌다. 인터넷 쇼핑으로 1권 사볼까? 떡을 4개째 먹고 있다. 나는 오전 4시 즈음 일어난다. 옛날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지? 내가 미쳤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잤다. ‘잠이 보약이지’라고 주문을 걸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서 깨면 몸은 몹시 찌뿌둥했다. 그래도, 너무 일찍 일어나는 것은 당혹스런 일이다. 마치, 꼴찌가 1등을 한 기분이랄까? 시험성적 조작문제로 교무실에 불려가서 당장 조사받아야한다. 꼴등은 그 근처에서 성적이 배회하는 것이 만사형통이다. 새벽 4시 기상은 나의 게으름에 대한 이율배반이다. 이런 습관은 몇 주 전부터 생겼을 것이다.
3주 정도 내가 변함없이 하고 있는 일이 있다. 일어나면,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것이다. 순례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나는 펜을 잡고, 공허한 노트의 광야길을 걸어간다. 허허벌판에 첫발을 내딛는 첫단어는 “너무 일찍 일어났다”로 시작했다. ‘너무’는 내가 뭔가를 손해봤다는 느낌이 들어있다. 6~7시 근방에 일어나야, 잠의 보약을 충분히 섭취했다는 마음의 보상심리가 작동하는데…. 잠은 시간에 비례해서 만족감을 준다는 고정관념이 내게 있다. 그것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다.
미국대선이 종결됐다. (트럼프는 승복하지 않았지만, 나는 끝났다고 믿고싶다.) 바이든의 얼굴은 떡집의 TV에서도 나왔다. 언제나, 새로운 출발은 희망을 준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출발은 얼마나 신선한가. 피자를 쏠 것이고, 떡복이집에도 데려갈 것이다. 바이든은 “무료백신”을 약속했다. ‘무료’는 항상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산 3병의 베지밀은 1병이 공짜요, 2병은 값이 있다. 공짜때문에 가격부담의 덮였을 뿐이다. 공짜는 없다. 어디선가 비용은 지출될 뿐이다. (떡은 이제 2개 밖에 남지 않았다. 어제 떡도 맛있다. 고스란 떡집은 체인점이 아니다. 방부제와 인공색소와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는다. 광고문구에 그렇게 되어있다. 그 집 사장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을 할 인상이 전혀 아니므로, 나는 이 문구를 믿는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주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모닝 페이지는 30분 정도 기록한다. 여기는 그냥 쓸 데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주절주절, 말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버리는 곳이다. 순례자의 심정으로 길을 떠났다가, 주머니에 있는 각종 말들을 꺼내서 버리는 곳이다. 모닝 페이지를 쓰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내가 욕을 바가지로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비밀의 공간속에 다녀온 느낌? 속죄소에서 모든 죄를 씻김받은 그런 느낌? 내 의식은 모닝 페이지로 매일 세례를 받는다. 나는 씻는 것이 정말 싫다. 옛날엔, 아주 옛날엔 냉수목욕도 했었다. 나이가 드니까, 온수목욕도 망설여진다. 씻지 않고, 나는 아침을 보낸다. 오전에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찌뿌둥함이 밀려오면, 나는 그때 씻는다. 언론인으로서, 작가로서, 자영업을 하는 혜택은 여기에 있다.
오전 6시, 떡을 사러 갔었다. 마스크를 쓰고, 그림자는 기억처럼 내 앞에 나타나 함께 걷는다. 고독은 새벽의 흔적이다. 도처에 침묵을 견딘 만물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인형뽑기 기계속에서도 그것들은 고독을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다. 자신들을 꺼내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지만, 인형뽑기 기계주인은 언제나 구원의 손길에 힘줄을 빼버린다. 그래야 손님들이 돈을 쓰게 되므로. 그들은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옆을 무감각하게 지났다. 나는 인형을 싫어하므로. 청소부 아저씨는 노란 은행잎들을 빗자루로 쓸어 담고 있었다. 내가 자주 가는 압구정 출신 장안동 미용사의 빠른 손놀림 같았다. 그 미용사는 가위질처럼 빗질도 섬세했다. 손님의 머리카락을 얼마나 빠르게 수습하느냐가 미용실 전체의 청결과 손님의 위생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청소부를 보면서, 미용사를 떠올린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머리가 많이 길다. 조금 더 참았다가 다음 주에 머리손질하러 가야겠다.
지금, AM 7:25이다. 37분 썼군. 잘했다. 이따 오후에 또, 써야겠다.
베지밀과 떡을 모두 먹었다. 남은 것은 빈병과 뚜껑, 떡을 담은 케이스와 비밀봉투다. 인생은 모두 살고나면, 무엇이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