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혈액형으로 규정되지 않고, 각자의 스타일로 행동한다. 패턴이다. 학교-학원-집의 패턴으로 움직이는 학생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하철 2호선은 계속 순환하고, 1호선은 1호선으로, 5호선은 5호선으로 운행된다. 1호선이 절대로 5호선으로 가지 않는다. 습관은 정해진 선로와 같아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그처럼, 어떤 분노요소를 좋아하는가? 갑자기 ‘불안’이 올라올 때가 있다. 강아지가 짓듯이, 마음속에서 불안이 “멍멍멍”할 때가 있다. 그 원인을 그때 파악해야한다. 삶의 심리학이다. 황소는 붉은 천에 반응하면서 질주하고, 호박벌은 꽃에 반응한다. 그처럼, 자신이 반응하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을 알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므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사람이 설사를 하면, 전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곰곰이 따진다. 그처럼, 자신의 감정이 웬지 우울해졌거나 폭풍이 쳤다면 그 원인이 어딘지 따져야한다. 태풍이 몰려오면, 적도 부근에서 그 바람이 형성되서 어디로 갈 것인지 기상청은 보도한다. 그처럼, 마음속에서 발생한 분노의 기압골을 파악해서, 환경의 지배를 다스리면서 살아야한다. 분노는 옷과 같아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변장해서 나타난다. 그것을 세밀하게 파악하면, 범인을 지목할 수 있다. 알아차리면, 당하지 않는다.
주님은 “경멸과 핍박과 무시”를 허용하라고 말씀하셨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고, 고발하는 자가 속옷을 가지고자하는 자에게 겉옷도 주고,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10리도 동행하라고 말씀했다. 멸시를 받고, 침뱉음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멸시와 경멸’로 느끼지 않으면, 마음은 상처를 받지 않는다. 마음의 수호천사는 자신이다. 짓밟힘을 당할지라도 그 영혼은 짓밟히지 않는다. 뺨을 돌려대면서 당당히 맞으면 된다. 상대가 무시하면, 그대로 인정하라! 상대의 평가는 상대를 평가한다. 내면의 상처가 깊어서 곪아 비틀어진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혼자 흥분한다. “감히 내가 누군줄 알고 무시해?” 상대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한 것인데, 오해한 것이다.
분노의 뿌리는 자신에게 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절대 아니다. 화나는 상황에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왜, 자신은 그런 상황에 화를 낼까? 나는 “너가 그것도 못해?”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요즘은 “나는 못해요. 어쩌죠? 같이 해볼까요? 방법이 뭐죠?”라고 묻는다. 내가 어찌 모든 일에 완벽할까? 상대는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망했다. 그럴수도 있다. 상대는 내가 무능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상대가 원하는 그 일을 내가 못한다는 것이다. “너가 그것도 못해”를 “너는 무능한 사람이야”로 확대해석해서 위축감이 드는 것은 자책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끈질긴 그 잡초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뿌리를 뽑던지 제초제를 뿌리던지 결단하자. ‘무시받는 느낌’을 없애는 잡초는 ‘괜잖아! 사람은 본래 실수투성이야, 넘어질 수 있어. 내일은 태양이 뜰거야.’라고 보듬어주는 것이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