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라만시 원액에 물을 가득 섞어 쥬스를 만들었다.. 노랑물감처럼 생긴 쥬스통을 들고, 솔솔 까페로 간다. 어제 즐겼던 삼악산 케이블카 덕분에, 새로운 관점이동이 자유로워졌다. 소나무 위에 까치를 보면, 까치가 볼 내 모습이 조감도로 보였다. 이러한 상상력은 뇌속에서 순간 일어나는 일이며, 장면전환의 감정변화를 일으킨다. 솔솔 까페에 앉아, 눈을 감으니, 내 생각은 창공에서 월곡산 바위를 내려다보고, 오동숲속도서관, 내가 있는 소나무숲도 내려다본다.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출렁거리고, 전복되고, 뒤섞이며, 멀어짐으로 가까워진다. 땅과 하늘이 뒤바뀌는 경험은 일상에 변혁의 바람을 불어오게 한다. 어느 도시에 가게 되거든, 케이블카를 최우선으로 타볼 참이다. 돼지 갈비를 뜯듯, 내 영혼은 성경말씀을 먹고 살아간다. 내 마음도 말씀으로 살아간다.
마태복음 13장 34절에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신다는 이사야 예언을 성취했다. 그리고 제자들이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제자들은 ‘가라지 비유’라고 했으나, 예수님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으로 말씀하셨다. 좋은 씨와 가라지다. 평소 읽던 말씀인데, 오늘에야 그 의미가 분명히 들렸다. 복음을 세상에 뿌릴 때, 전도자가 복음의 씨를 뿌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고, 전도자가 오히려 좋은 씨다. 즉, 주님이 전도자를 세상에 뿌린 것이다.
전도자가 좋은 씨인 이유는 뭘까?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씨앗의 핵심은 ‘씨’에 있다. 사람은 씨를 품고 있는 껍질이다. 그래서 좋은 씨인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좋은 씨라고 말한 것은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곧 성령이다. 자기 안에 자기가 가득하면, 좋은 씨가 아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좋은 씨는 곧 예수님이다. 가룟유다도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었으나, 마귀가 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섭취하고, 스스로 탐심이 가득하여 예수님의 씨앗을 거절하고, 세상 것과 맞바꿨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이신칭의가 거짓됨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실 때, 나는 좋은 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제국에서 불러내 가나안 땅에 심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실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얻은 생명이며, 하나님의 열매다. 말씀대로 하나님이 낳으셨기 때문이다. 단 1명이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을 낳고, 야곱을 낳고, 그렇게 단계저긍로 하나님의 백성을 이 땅에 심고 관리하셨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이 있고, 이방인들중에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길 즐겨하는 자가 있다. 누가 참이스라엘인가!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칭의를 정말로 받은 자는 그 구원이 영원할 수밖에 없다. 왕의 성은을 정말로 받은 궁녀가 어떻게 사는가! 하나님을 마음에 품은 자는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다. 그런데, 떠난다면, 그는 하나님을 만난 것인지, 아닌지, 왜 그런 비참한 결론이 찾아왔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예수님이 자기 목숨까지 버리면서 주신 사랑의 언약인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니까, 하찮은 세상 것에 마음을 뺏기고 살 뿐이다. 이신칭의는 죄로 얼룩진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데, 주님을 믿으면서도 죄를 즐기는 자들이 범죄를 몰래 허용하는 출구로 활용되고 말았다. 이신칭의가 죄의 개구멍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어쩌나! 이를 어쩌나! 죄가 계명을 타고 들어오듯, 이신칭의라는 교리를 통해 죄가 성도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또 용서를 해주신다는 것만 강조하니, 주님을 믿으면서도 죄를 멀리하지 못하고, 성령의 능력도 나타나지 못한다. 그저 진리를 교리적으로, 지식적으로 전할 뿐이다. 아, 슬픔이여! 주님을 영접하기 전까지는 ‘이신칭의’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이신칭의’가 아니다. BC, AD가 다르듯, 주님을 영접한 후로는 주님과 함께 죄를 대적해야 한다. 죄를 먹어도 죄가 아니다는 그런 괴상한 교리에 현혹되면 안된다. 맨날 죄의 늪에서 허덕거릴 이유가 없다. 주님을 영접하면, 이제는 빛의 아들이다. 주님이 몸안에 들어오셨고, 주님과 함께 마귀를 대적해 싸워야 한다. 그것을 알면, 복음의 정곡을 아는 것이다. 좋은 씨는 예수님을 마음에 품는 성도이고, 성령의 열매는 마음에 주님을 품고 행하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다. 그저 세상이 정한 기준대로 사는 것은 열매가 아니다. 씨앗과 열매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오동숲속 도서관이다. 책을 펼쳐, 잠들었다. 책은 잠의 문이다. 눈을 감고 꿈을 꾸는 일이 내 마음에 안식을 준다. 옛날엔 불을 켜고 기어이 공부를 했다면, 요즘은 불을 끄고 눈을 감는 연습을 한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게 내 영혼의 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해서,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자주 잠자는 버릇이 있다. 심리학 전문용어로 멍때리기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관해, 내가 존재하는 근거에 대해, 내가 살아갈 방향에 대해, 지금 나를 내가 생각하는 시간이 나는 좋다. 내 안에 계시는, 나보다 크신 존재, 그리스도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