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이 칼로 압살롬과 아마사를 죽였다. 요압의 칼에 죽었던 사람들이 참 많다. 요압은 다윗의 칼이었다. 다윗은 요압을 이용해 우리야를 죽였다. 그러했던 요압이 다윗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윗의 아들을 반역자로 처단했다. 그때 다윗은 군대장관을 아마사로 변경했다. 이어, 세바의 난이 일어나고, 이스라엘은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다. 다윗의 명령체계가 붕괴된 것이다. 요압은 전쟁을 하러 가면서, 아마사까지 죽여버린다.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임명을 받은 신임군대장관인데, 요압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반란에 수괴역할을 했으나, 다윗의 친인척이란 명목으로 사면을 받았을뿐만아니라 군대장관까지 되었으니, 요압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세바의 난은 무혈입성하듯 승리했다. 다윗의 섣부른 판단착오였을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러한 것일까? 세바의 난을 조급하게 진압하려고, 아마사를 보내어 군대모집을 하라고 했으면서, 이어서 곧바로 아비새와 요압을 보냈으니, 명령이 2번이나 나간 것이다. 그런 탓에 요압에게 군대가 있고, 아마사를 만나면서 살해한 것이다. 다윗이 세운 군대의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세바의 난을 진압하는데, 이름도 없는 어떤 여인이 요압을 부른다. “가까이 오라!” 요압은 그 여인에게 나아가, 그녀의 말을 듣는다. 세바의 머리만 주면 물러가겠다는 약조를 받아낸 그 여인은 세바의 목을 가져온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것이다.
내 마음의 성읍에 반란의 괴수가 살고 있다. 어둠의 왕이 내 안에 있으니, 나는 반란의 죄악이 가득하여, 심판의 멸망을 받을만한 존재에 불과하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든지, 믿지 않던지, 내 마음의 성에 살고 있는 칠흙처럼 두터운 탐욕의 구렁이는 곧 옛뱀, 용이다. 내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지, 나는 이미 그들과 공범으로 하나님을 반역했다. 그래서 심판의 칼날이 나를 향할 것이나,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성령의 여인이 내 안에 들어와, 그러한 탐욕의 머리를 잘라, 슬픔의 베옷을 입고, 기도함이다. 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그저 쉽지 않다. 돈이 없든지, 많든지, 내 마음의 성읍이 무엇의 지배를 받는지, 항상 유심히 살펴볼 뿐이다. 세바의 난이 진압되고, 요압이 군대장관이 되었으나, 그게 누구의 은혜이며, 요압은 이후로 진정 ‘지혜의 여인’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는가! 사람은 그렇게 본다면서 못 본채로 살아갈 뿐이다. 세상을 향한 창문이 열려있는 자는 하늘을 향한 창문이 닫혀있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검은 커텐이 자의든, 타의든, 닫힌 자는 세상이 닫힌 까닭에 하늘의 창문이 열릴 확률이 높다. 세상에 대해 어둠속에 처했을 때,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그 침묵의 동굴에서 들려오는 하나의 소리가 있으니, 지혜의 여인이 말한다. 그 소리가 내 발등상을 비추는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