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순환활동으로 유지딘다. 커피, 비빔밥을 먹으면, 식도를 통해 위장에 도착한 그들은 하나로 섞여 몸에 적합한 언어로 탈바꿈한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입력되는 정보를 해석의 소화과정을 통해 작가의 언어가 재창조된다. 언어는 정보습득의 생명활동이다. 외부에서 내부로(읽기,듣기) 내부에서 외부로(쓰기, 말하기)는 순환이다. 순환에 병목현상이 생기면, 그 단절은 소외, 억압, 분노, 단절로 나타난다.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단어를 아는 것 이상이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설계된 길이 곧 문법질서다. 언어의 문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과학적 언어, 건축학적 언어, 즉 언어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문법(文法)은 문장의 법칙이다. 우리가 법률조문을 모르더라도, 도둑질과 강간과 폭행과 거짓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무단횡단을 하면, 괜히 마음이 찌뿌둥한다. 교통법규를 알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법률이 일상생활에 적용되지만, 우리는 그 법률의 허락없이도 자유롭게 살아간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 이미 가격이 정해진 상품에 대해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법률이 수행된 것이다. 우리는 몰라도, 법률에 따라 이 사회는 굴러간다. 문법도 동일하다. 문법의 전문지식을 알지 못해도 우리는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다.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는 것,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나쁘지 않는, 그런 존재로 문법은 취급을 받았다. 계륵같은…. 구석에 처박힌 메주같은…
그러나, 우리는 조용히 물어야 한다. 문법이 정말 불편한 존재인가? 무용지물인가? 알았을 때, 왜 문법시간이 지루했을까? 우리가 아는 문법이 진짜 문법의 실체가 맞기는 할까? 사람들은 언제 졸립고, 언제 정신이 바짝 차려지면서 눈이 크게 떠지는가? 자기와 상관이 있을 때, 사람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문법이 졸린 이유는 나와 상관없는 내용이어서 그렇다. 그렇다면, 나와 상관있는 살아있는 문법은 뭘까? 이 책은 그것을 알려주려고 기술한 것이다.
문장을 분해하는 것은 언어의 미적분이고, 문장의 분해조립 및 건축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아도, 자동차를 분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계, 권총, 밥솥,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로봇 청소기 등등 실생활에 친숙한 도구일수록 내부분해는 쉽지 않다. 핸드폰, 내부를 열고 전자회로를 만지면서 카톡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말할 줄 알아도 말의 질서, 말의 설계도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문법 수업이 몹시 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법을 그저 말하기의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문법 자체가 갖고 있는 전문용어, 질서체계를 근원적으로 알려주지 못한 까닭이다.
문법의 기본뼈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가령, 음악의 심장인 화성학은 기본뼈대가 언제 만들어졌을까?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 두 음 사이의 거리를 비율로 환산해서, 도레는 불협화음, 도미는 불완전 협화음, 도파와 도솔은 완전 협화음으로 정의했다. 도파, 도솔은 유리수로 나누어 떨어지니까 그렇게 정한 것이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적으로 정의한 소리의 기준이 중세사회를 지배했다. 화성학 체계는 라모를 통해 집대성됐다. 이와 같이, 한 분야의 체계는 시대를 걸쳐서 사람의 손에 의해서 새롭게 수정되고, 보완된다. 현대문법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한국문법은 조선시대의 것을 상속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도입된 학문체계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법의 기원은 18C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법이 없던 시절, 라틴말 문법체계가 존재했고, 18C는 이성주의 시대다. 합리적으로 논증하는 시대였다. 논리가 기준이었다. 라틴말 문법과 논리학이 문법의 두 기둥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문법시간에 논리적으로 분해하고, 라틴말 문법체계에서 만들어진 기준에 의해서 품사를 구분하고, 그렇게 언어를 해석하려고 했다. 당시, 영문법이 없던 시절, 라틴말 문법체계로 영어를 규정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모순에 봉착한 것이다. 과연, 라틴말 문법이 영문법과 맞는가? 나중에 그것을 연구하면서 언어학은 새로운 물결을 타게 된 것이다.
이런 것과 같다. ‘도파’는 완전협화음이고, ‘도미’는 불완전협화음이다. 이름만 들어보면, ‘도파’는 완전무결이다. 그런데 ‘도파’는 수학적으로 완전할 뿐, 들어보면 뭔가 이상하다. 두 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반면, ‘도미’는 불완전 협화음인데, ‘도미솔’ 화음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로 어울린다. 언어는 ‘불완전’인데, 완전한 화음이 여기서 나온다. 음악적으로 완전한 화음은 ‘도미’다. 이름에 속으면 안된다. 라틴말 문법체계에서 차용한 문법전문 용어가 영문법에 그대로 적용됐고, 그 영문법이 국문법으로 넘어오면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동사(動詞)는 움직이는 품사다. 과연, 동사가 움직이는 것이 맞기는 할까? “달리다”는 그렇다면 ‘동사’다. 그렇다면, ‘달리기’는 동사인가, 명사인가? ‘뜀박질’은, ‘딸꾹질’은?? 품사가 그 정의대로 따져보면, 뭔가 모순된 것들이 발생한다. 이런 모순은 최초에 라틴말 문법을 통해 영문법의 기초를 세우면서 발생한 오류인 것이다. 서론은 여기까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