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이 일찍 끝났다. 오후 2시에 끝나고, 집에 오니, 3시였다. 간증도 쓰고, 빨래도 하고, 저녁도 먹고, 원천희 목사님 설교 주변을 맴돌다가, 일꾼 누나 말이 생각난다. “주일설교가 방향이다” 아멘! 화살의 암호에 따라 요나단과 다윗이 약속을 정하듯, 주일설교가 약속의 암호인데, 그것을 내가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윗이 요나단과 약속만 하고, ‘화살’을 안보는 것과 같다. 믿음은 ‘화살’을 보는 것이지, 안보고 그냥 믿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7조각으로 주일말씀을 나누었다. 오늘은 월요일, 그 한조각을 먹었다.
“너의 아버지 사울로 인해서 나와 사망의 죽음의 사이에는 한 걸음 뿐이라고 솔직히 그에게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다윗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 작은교회를 통해 내가 받았던 그 양육이 사실은 ‘다윗의 인격’이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원천희 목사님이 사람과 사람, 등장인물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니, 사울과 요나단과 다윗, 그리고 각각의 관계가 어떻게 갈등을 빚고 있는지, 요나단에게는 아버지였던 사울, 다윗에게는 장인이었던 사울, 그런데 다윗이 요나단에게 엄청난 고백을 한 것이다. 어찌보면, ‘이간질’일 수도 있고, 친구사이에 해서는 안되는 말일 수도 있다. 친구 아버지 욕을 하는 것인데…. 다윗은 ‘욕’이 아니고, ‘흉’도 아니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자기가 죽게 생겼으니까, 그것을 고백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이 ‘관계회복’의 첫단추였다니!!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시선이 겁나니까, 내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않고, 그냥 참고 지내는 것이 나중에 보면 ‘고름’이 된다. 나는 주일말씀을 읽으면서, 요나단은 주님과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솔직히 자기 속마음을 털어 놓듯이 주님께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고통,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너무 한심한 감정의 나약함, 그것을 토로하면서, 방법을 찾으면서, 그렇게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다시 마음에 담는다. 주일날 기차교제를 하면서, 00 자매님이 자기 동창생을 보면서, “나보다 훨씬 더하는데, 어떻게 나와 비교할 수 있는지, 정말 말도 안돼!”라고 하는데, 그게 나였다. 내가 정말 00 자매님처럼 반응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말했다. 사람한테 말하지 않았다. 사람한테 말하면, 사람 흉을 보는 것으로 끝나고, 뒤끝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 자신의 모습이 진짜 왜 그런지, 내 마음 그대로 주님께 하소연했다. 일꾼 누나의 작교모임 교제가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남편과 갈등문제를 놓고, 너무 속상해서,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그냥 울부짖으면서 주님께 하소연했는데, 희한하게 그런 기도조차 주님은 응답을 해주셨다는데…. 마음의 빚어짐…. 솔직히 주님께 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해보려고 수시로 무시로 해보니까, 그게 의외로 주님과 사귐에 상당한 접착력을 준다. 도마를 봐도 그렇다. 그냥 자신은 못 믿겠다고, 그냥 그렇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는데, 그런데 그 말에도 주님은 있는 그대로 반응하셨다. 솔직한 마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