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까페에서 부활복음 소책자 1과(P5)를 묵상했다. 사도행전 17장 30-31 말씀이다. 처음 이 성경말씀을 접했을 때, 정말 생소했고, ‘믿을만한 증거’라고 적혀 있으니, ‘부활’은 곧 ‘증거’라고 공식처럼 입력됐다. 그런데, 문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하신 사람으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믿다’의 목적어는 무엇일까? 문맥을 자세히 파악해서 읽었다. 부활이 ‘믿을만한 증거’인가? 부활이 증거인가? 전체 문맥으로 보면, ‘부활’이 곧 ‘증거’인 것이다. 예수님이 곧 심판주라는 것! 예수님이 구원주라는 것! 그 증거가 ‘부활’이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절대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죽은 모기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의사 100명, AI 1만대 로봇이 동원될지라도 죽은 모기 한마리를 다시 살리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권한’이다.
‘증거’는 무엇인가? 엘리야는 시체를 찾지 못했다. 불병거를 타고 올라갔다고 엘리사가 증언했다.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엘리야는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올라갔다는 주장만 있지, 다수의 사람에게 확인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독특하다. 만약, 사도행전의 기록만 있었다면, 그 기록을 사실로 믿을 수는 없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지는 않는다.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사도행전 17장 30~31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럴 수는 없다. 내가 ‘부활’의 사실성을 알지 못했을 때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도 ‘이런 구절’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부활을 설명할 때, 인용하기 좋은 성경구절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달랐다. 오늘, 비로소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증거는 증거로서 효력을 가져야 증거다. 최근, 지방선거 투표함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발생해, 법원에서 현장검증을 판결했고, 증거보존을 받아드렸다. 판사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투표함이 실종됐다. 이것은 ‘증거부실’이다. 투표함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증거는 반대편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서 그 효력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제시한 증거는 ‘부활’이었다. 특히, 예수님의 육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만약, 육체가 그대로 시체로 있고, 그 영혼만 살아났다면, 제자들은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복음서 끝자락은 ‘증거검증 보고서’였다. 국회에서 특검(특별검사)을 구성해서, 증거조사를 하는 것과 동일하다. 제자들이 인류의 대표가 되어서, 과연 예수님이 죽었다가 실제로 살아났는지, 그것을 검증한 것이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몸을 보이셨다. 즉, 증거물을 공개한 것이다. 와서 보라! 만져 보라! 뼈와 살이 있다! 손톱도 있다! 팔뚝도 있다! 코뼈도 있다! 이빨도 있다! 상처도 있다! 갈비뼈도 있다! 복숭아뼈도 있다! 발목도 있다! 팔꿈치도 있다. 귀도 있다. 만져보라! 사람과 동일한 몸이다! 그런데, 다르다! 사람의 몸인데, 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주님은 생선까지 드셨다. 제자들이 만졌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실제로 만나서 악수까지 할 수 있다. 그런 몸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것을 제자들이 검증했다. 1차 검증, 2차 검증에서는 까탈스런 검사로서 도마가 참석했다. 도마는 검증하자마다 증거로 인정했다. 3차 검증은 디베랴 호수에서 제자들이 모두 받아드렸다. 4차 검증은 500명 앞에서 승천하면서 진행됐다. 가장 마지막 검증은 ‘바울’이다. 바울이 부활을 인정했다는 것은 ‘증거의 완벽성’이다. 왜냐면,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한 자였기 때문에 얼마나 까다롭게 증거를 따졌겠는가! 다메섹에서 그런 사건을 겪었을지라도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정말로 자세히 들었을 것이다. 한명 한명 찾아가서 묻고, 묻고, 물었을 것이다. 바울의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다.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철저한 검증을 통해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 “나를 만져보라”는 그 말씀이 오늘은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주님은 ‘부활’을 제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이시면서, 확증하도록 공개했다. 숨기지 않았다. 손과 발에 상처를 보이신 것! 그것은 죽었을 때 그 육체도 함께 살아났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왜냐면 무덤에서 시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복음서 끝자락은 ‘부활의 증거’를 검증하고 있는 제자들의 실시간 cctv인 것이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만난 곳이 마태복음에 나오고, 요한복음에는 마리아가 만났는데, “붙들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여인들이 예수님을 만나자, 의심없이 그냥 “아멘”한다. 정말 믿음이 좋은 여인들이다. 남자들은 받아드리지 않았다. 의심하면서, 믿지 않으면서, 그 증거가 사실인지 따지면서 그렇게 검증한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의 몸을 만져보라고 하셨다. 그래야 증거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 끝자락은 ‘부활의 증거’를 검증한 제자들의 보고서였던 것이다. 나는 그 보고서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부활의 목격자들이 부활을 목격한 후부터 죽을 때까지 그 부활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부활의 증거는 조작되지 않았고, 제자들의 관점에서 철저히 검증된 후에 ‘부활의 사실성’이 인정되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