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연 문화리더, 경복궁(근정전, 경회루)를 다녀왔어요
기록리더 : 윤정연
기록리더 학교 : 인수중학교 1학년
취재 날짜 : 11월 28일(토)
취재 장소 : 경복궁(종로구 사직로 22)
취재 제목 : 경복궁을 다녀와서
1. 취재 동기 : 우리나라의 법궁이며, 조선시대 때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무너지게 되는데 이때 흥선대원군의 지위에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경복궁에 만은 역사가 담겨져 있어 취재하게 되었다.
2. 문화재 취재내용 : 경복궁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다. 국보 제223호로 지정된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이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근정전(勤政殿)의 이름에는 ‘아침에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이다’ 라는 뜻이 담겨있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는 3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근정문이 있으며 그 좌우에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동쪽 행각에는 융문루(隆文樓)가, 서쪽 행각에는 융무루(隆武樓)가 있다.
정전 영역의 입구인 근정문은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朝參)행사를 하는 곳이다. 왕은 근정문의 가운데 칸에 어좌를 설치하고 남향으로 앉고, 신하들은 흥례문 일곽에 도열하여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 즉, 근정문은 단지 드나드는 출입문의 역할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곳이다. 왕의 즉위나 외국 사신접대 등의 큰 행사는 근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신하들은 마당에 놓여진 품계석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마당에는 돌을 얇고 네모나게 다듬은 박석이 깔려 있는데, 표면을 약간 거칠게 마무리하여 단조롭지 않고 빛이 반사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이 마당에서는 노인들을 격려하는 기로연(耆老宴)이나 과거시험도 치러졌다.
3. 느낀 점 : 지금은 왕이 없어 경복궁의 주인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훼손시키면 다시 원래 상태로 복구해놓는 분들께 매우 감사하다. 경복궁은 예전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개방이 되어 매우 기쁘다. 경복궁을 다시 만든 흥선대원군도 존경스럽기도 한다.
4. 문화재를 찾아가는 교통편 :
3호선 경복궁역 5번출구 도보 5분
5호선 광화문역 2번출구 도보 약 10분
경복궁 남측:109, 171, 272, 601, 606, 1020, 7025
경복궁 서측 : 1020, 1711, 7016, 7018, 7022, 7212, 6011, 9703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식 탐방을 다녀왔어요
기록리더 : 윤정연
기록리더 학교 : 인수중학교 1학년
취재 날짜 : 11월 28일(토)
취재 장소 : 광화문
취재 제목 :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식 탐방을 다녀와서
1. 취재 동기 : 세월호 사건 때 교황님이 오셔서 세월호 유가족분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때 당시 유가족분들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또, 교황님이 뇌졸중을 겪고 있는 1살짜리 미국 여자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했더니 기적같이 뇌졸중이 다 나아다고 한다.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 걸 알게 되어서 취재하게 되었다.
2. 문화재 취재내용 :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이다.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플로레스 지역으로 이민 간 철도노동자의 다섯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한 후 1963년 산미겔의 성 요셉 신학교에서 철학사 학위를 받고, 1964~1966년 산타페 인마콜라다대학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엘살바도르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쳤다. 1967~1970년 성 요셉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년여의 수련과정을 거쳐 1973년 종신서원을 하고, 1973~1979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냈으며, 1980~1986년 산미겔 철학신학대학 학장 겸 산미겔 교구 파트리아르카 산호세 본당 주임 사제로 활동하였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받고 주교품을 받았으며, 199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주교, 이듬해에 대교구장이 되었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2005~2011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다. 2013년 3월 13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시리아 출신 교황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고, 2000년의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초의 미주 출신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기도 하다.
공식 교황명인 프란치스코는 이전에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명칭으로, 청빈, 겸손, 소박함의 대명사인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역시 성 프란체스코처럼 평생 청빈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주교가 된 후에도 주교관 대신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며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고 음식도 직접 해먹었으며, 빈민가에서 활동 했다 한다.
4. 느낀 점 :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 터를 광화문 바닥에서 보았다. 프란치스코 주교님은 우리나라에 찾아와서 많은 도움을 주고, 청빈, 겸손, 소박함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분이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더 깨달았다.
5. 문화재를 찾아가는 교통편 :
버스 101 – 광화문 하차
지하철 5호선 – 광화문역 하차
세종대왕 동상 탐방을 다녀왔어요
기록리더 : 윤정연
기록리더 학교 : 인수중학교 1학년
취재 날짜 : 11월 28일(토)
취재 장소 :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
취재 제목 :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나서…
1. 취재 동기 : 세종대왕은 조선 시대의 백성들을 위해 현재 우리가 편하게 쓰기도 하고 세계에서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될 만큼 우수한 한글을 창제하신 분이다. 그래서 존경스럽고, 또한 왕으로서 어떻게 힘없는 백성들까지 알뜰하게 챙기셨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취재하게 되었다.
2. 문화재 취재내용 : 경복궁 앞 세종로에 조성되어 있는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세종대왕은 민족의 영웅으로서 경복궁에서 즉위하여 승하하신 최초의 임금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 등을 고려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동상은 높이 6.2m, 폭 4.3m 규모로 기단 위에 좌상으로 남쪽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 뒤(250m)에 자리 잡고 있다. 동상의 모습은 왕의 위엄보다는 온화한 표정으로 한손에는 책을 들고 또 다른 손은 백성들을 다독이는 듯 한 친근한 느낌을 준다.
세종대왕 동상 전면 공간에는 혼천의(渾天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기구), 측우기(測雨器, 조선 세종 이후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쓰인 기구), 앙부일구(仰釜日晷, 17~18세기에 제작된 해시계)를 만들어 전시해 놓았고 광장 가장자리에 흐르는 물길에는 조선시대 연표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동상 후면에는 기둥형태의 6개 열주에는 집현전 학사도, 주자소도, 6진 개척도, 대마도 정벌도, 지음도, 서운관도를 부조 형식으로 조각해 세종대왕의 업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동상 후면 기단에는 세종이야기 전시관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4. 느낀 점 : 평소에 차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다닐 때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면 그냥 한 번 보고 말았지만 오늘 이렇게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동상이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되는 등 신기했다.
5. 문화재를 찾아가는 교통편 :
버스 101 – 광화문 하차
지하철 5호선 – 광화문역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