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업무는 무형의 것이 많고, 요리사가 주방을 오픈하듯 자주 나는 의뢰인들에게 나의 제작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변에서 조언해도, 나는 항상 신뢰성에 기반해서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노트북을 펼쳐놓고서 지금도 일한다. 내가 요즘 대략 함께 전자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100여명은 넘는 것 같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처음엔 ‘홍보비’에 대해서 황당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이것만 있지 않고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사업을 특화해서, 고객중심 맞춤형 아이템을 제안하면, 고객들은 매우 좋아하면서도 지갑을 열때면 꼭 ‘유형적 가치’로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종이신문이 800원인 것은 종이값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과연 종이신문이 800원인 것이 종이값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종이안에는 엄청난 정보가 들어있고, 800원보다 더 큰 광고비용이 그 안에 들어있다. 종이신문사들이 ‘판매료’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신문 수수료도 대부분 가판대에 귀속된다. 신문사는 단지 800원으로 책정하고, 다른 곳에서 돈을 버는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모순과 오류’를 발생시킨다. 가위질로 평가해서, 의사들에게 ‘재봉질 값이 비싸다’고 항의하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물론, 몸의 재봉틀과 옷의 재봉틀은 전혀 다르면서 비슷하다. 몸의 재봉틀은 피부와 생명과 직결되어 있고, 옷은 우리가 입는 의식주이며, 수선집에서 쉽게 가능하다.
모든 분야에서 전문분야의 전문기술의 가치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군가의 특화된 분야를 만나면 정말로 존경스럽게,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어찌보면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 같다. 이렇게 서로의 가치를 알아줄 때, 상대도 나의 가치를 알아준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책설계를 해줄 때가 있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처음엔 재미삼아 했었고, 이런 일이 나의 흥미이고, 누군가의 삶을 책으로 엮는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좋아서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마음속에서는 그것이 책인 것을 알겠지만, 이제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일하고싶다. 작지만, 경제적 가치로 평가해도 서로 흔쾌히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에 있을까?
참 많이 고생했던 것 같다. 교육분야 언론인으로서 발이 부르트도록 서울교육청에서 고독과 싸웠던 때도 있었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어떤 학교에 비디오와 카메라와 삼각대를 메고서 낑낑거리고 방문했던 때도 기억이 난다. 모두 창문의 추억처럼 스쳐간다. 나의 삶이며, 나의 호흡이며, 나의 걸었던 시간의 자취들이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무엇이 보다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무엇을 위해서 내가 살아야하고, 내가 열정의 수도꼭지를 잠궈야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고쳐야할 것이 무엇이며, 내가 행해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많은 경험이 없었다면, 내가 경제적 가치만을 따지면서 나에게 오는 봉사의 무대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나’의 재능은 성장을 멈췄을 것이다. 경제적 가치로 보상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배웠고, 나는 행했고, 나는 보았고, 나는 느꼈고, 나는 만났고, 나는 ‘나’를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걸어온 그 동안의 교육적 가치의 삶이며, 후회없는 나의 길이다.
아주 가끔 돈이 되는 기회의 새가 날아와 내 주변을 맴돌 때, 나는 빙그르르 웃는다. 왜냐면 나는 그것을 잡을 경제적 손이 없으니, 그저 웃으면서 인사만 나눌 뿐이다.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 있다면, 그 정보를 알려주겠지만, 사람들은 단지 모를 뿐이다. 그것이 기회의 새인줄 안다면 잡았을 것이다. 살다보면, 나에게 ‘경제적 손’이 허락될 때 그 기회의 새가 내 손등에 살포시 내려앉길 기도하며…… 나는 오늘을 또한 희망으로 살아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또한 기회의 새가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