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계설계학과 출신이다. 중공업이 경제중심축을 담당했던 시절, 나의 학과는 꽤 인기가 있었다. 91학번 당시 기계설계학과는 자동차공학부로 이름이 변경됐다. 이듬해 경쟁률이 껑충 뛰었다. 나는 미래 기업가로서 꿈을 품고, 전공에 매진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자동차 시장과 기업체를 강타했을 때, 졸업은 곧 ‘절벽’이었다.
MS 도스가 당시에도 유행했다. 윈도우가 나오기 전이었으니, 컴퓨터 전문용어를 암기하면서 ‘C언어’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이후 ‘창문’으로 불리는 윈도우가 전세계를 강타했고, 핸드폰을 활용하는 인터넷 혁명이 2007년 즈음 또 한번 강타했다. 나는 그때 블로그를 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렇다. 교육은 12년이고, 대학까지 합하면 16년이며, 군생활과 유치원 시기를 합산하면 20년동안 우리는 배운다. 대학원 과정을 첨가하지 않더라도 교육에 속한 우리들은 우리의 삶속에서 ‘2번의 강산’을 변화해야하다. 이 얼마나 긴 기간이던가?
고등학교와 대학은 불가분 나눌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대학을 진학함에 있어서, 얼마나 깊은 미래 설계를 하고 있을까? 과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의 세계가 10년후에도 지속할까? 많은 직업들이 없어지고, 새롭고 창의적인 직업들이 탄생할 것이다. 누가 이것을 미리 내다보고 설계할까?
주식투자도 미래에 대한 예측경제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이고, 경매도 그렇다. 미래의 가치와 현실의 가치를 비교분석해서, 미래를 내다보고 현실의 투자를 감수하는 것이다. 10년후를 우리가 내다볼 필요가 있는 것은 ‘사람의 성장’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특히 10년후를 미리 예측하고 진로를 선택해야한다.
2025년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측컨대,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10살 더 먹게 될 것이다. 학생은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고, 독신은 결혼을 했을 것이고, 아이들은 자라서 학교에 입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10년후를 내다볼 것이다. 10년후를 미리 준비하고 기다렸던 사람들은 그때의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맘껏 활개치게 될 것이다.
◆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분별할 것.
세계는 통합하면서 디테일을 추구한다. 글로벌 시대에서 세계는 통합되었고, 각 국가의 문화는 다양성으로서 특색지어진다. 국가안에서도 각 지역은 전통문화로서 ‘관광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유럽 등등 독특한 고유문화로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10년후에 변하지 않을 것은 ‘지구’와 ‘나라’일 것이다.
내가 학교다닐 때에는 ‘영어’가 최고의 언어였다. 영어를 잘하면 꽤나 인정받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보다 지금의 영어실력은 더 높아진 것 같고, 영어를 비롯해서 일본어, 중국어가 뜨고 있다. 10년후에는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영어에 대한 인지도는 지금과 동일할 것이고, 중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므로 중국어에 대한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 같다. (이것은 나의 견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내 삶을 세계문화속에 투영해서 재해석하기위해서이다. 물론, 시간이 남아서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미래를 대비해야한다. 10년후에 대해서 우리가 곰곰이 따져보면 지금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더 실속있게 준비할 수 있다. 해야할 일과 할 필요없는 일, ‘할 일’과 ‘안할 일’을 구분하고, 해야할 일에 보다 집중한다면 짧은 100년의 인생가운데 성공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기계설계학과 출신으로서 ‘언론인’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행복하다. 언론인으로서 ‘기계설계학과’는 잘못된 선택임에 분명하다. 나는 학창시절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 젊은이였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어쨌든 설계학적 사고로서 기사를 편집하고, 책을 쓰는 실력을 익혔으니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대학생활에 대한 나의 삶이 많이 아쉬울 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열역학’과 ‘재료역학’과 ‘전단력’ 등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10년후 미래설계가 참으로 중요함을 알게 된다. (나의 영혼을 생각하면 100년후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이다. 인생이라면, 인생이 선분위에서 살아가기에 그것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미련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선분위에 살아가므로 선분 끝에 놓이게 될 그 순간을 지금부터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래설계는 종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