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성 대표의 옥새투쟁
정치에서 소신껏 행한다는 것은 ‘독불장군’(獨不將軍)의 이미지가 따라오는 것 같다. 당대표 혹은 원내대표여도 이것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왜 한국정치가 여전히 왕권통치시절에나 경험했던 권위주의 제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을까? 실로 미련스럽게 안타깝다.
김무성 대표가 옥새투쟁을 통해서 마지막 정치인들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려고 하는 듯 한데, 그것마저도 용인(容認)되지 못하고, 나아가 그 자체가 ‘김무성 대표의 독단’으로 비쳐지고 있으니, 가관이다. 도대체 누구의 문제이고, 누구의 압력이고, 누구의 통제이던가?
회사의 이익은 이윤추구(利潤追求)이듯이 정치의 목적은 정권창출이라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깔아야해서, 김무성 대표의 행위는 정권창출에 위배(違背)된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새누리당이 포용의 폭을 좁히면 좁힐수록 그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수권정당(受權政黨)에서 수구정당(守舊政黨)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나의 개인적 견해(見解)는 김무성 대표의 옥새투쟁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옥새(玉璽)는 진시황제의 도장을 의미한다. 주나라의 춘추전국시대가 종결되고, 명풍 야광구슬로 널리 알려진 벽옥(璧玉_완벽의 고사성어가 된 구슬)은 진시황제의 직인으로 변화된다. 새(璽)는 옥으로 깍여, 왕의 직인을 새겼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직인이 과연 어떠한 재질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상징성으로 옥새(玉璽)일 것이다.
3월 25일까지 김무성 대표의 직인과 새누리당 직인이 함께 찍혀서 후보자 추천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되어야만 후보등록이 마감된다. 서류심사의 가장 중요한 요건(要件)이니, 김무성 대표가 옥새투쟁을 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어떤 측면에서 옥새투쟁을 벌이는 김무성과 옥새투쟁을 벌였던 김종인 대표는 매우 다른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더 불리한 입장이다. 김종인 대표는 자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과 본인의 총신이후 입지를 함께 말뚝 박듯 포석하고, 본인이 쥔 옥새를 가지고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이와 달리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을 떠나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비박계 의원들을 위해서 ‘다시 돌아올 뒷문’을 마련키 위해서 마지막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과연 누가 더 포용의 정치에 가까운 배수진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모두 옥새투쟁으로서 정치의 소신을 지키려고 한다는 명분(名分)은 국민들의 공감을 울리는 긍정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어떤 가치를 지키기위해서 본인들이 투쟁과 희생을 감수하는 책임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