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민의 한강] / 박근영 칼럼니스트
며칠 전 금요일에는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을 다녀왔다. 회사에서 지척인 곳인데도 근무 시간 이외에는 같은 동네, 같은 구에도 남아 있기 싫은 직장인의 본능인지 왠지 내키지 않았던 곳. 그런데 이번에는 늘 똑같은, 그저 그런 금요일처럼, 맛있는 저녁이나 먹으며 보내고 싶지는 않아 큰 마음 먹고 가보기로 했다.
길을 잘 못 들어 한참을 돌다가 야시장임을 알려주는 주황 천막들의 나열을 발견하니 확 느껴지는 북적거림. 활기참. 그것은 일터 여의도가 아니라 여름날 축제가 한창인 자라섬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예쁘게 세로 종렬 늘어선 푸드트럭이 뿜어내는 온갖 달고 짜고 매운 음식 냄새. 시원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꺄하, 호호, 웅성거림과 여기에 자연스럽게 섞인 재즈공연이 만들어 내는 우아하고 발랄한 소음.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요트와 수상오토바이들의 이국적임.
거기에 한강변에서 불어오는 강물과 나무, 잔디가 적당히 배합된 산뜻한 바람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고 결국 운전을 맡은 나는 과식, 나의 동행인은 과음으로 이성을 잃었다.
요즘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는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를 보면, 도시인의 쉼터로서 한강의 중요성과, 그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한 꽤 설득적인 한강변 조성안이 제시되어 있다. 작자는 값 비싼 한강변 고층 아파트 단지가 한강으로의 진입을 막고 있고, 때문에 파리 세느강 강변 카페 같은 공공 상업가가 조성되지 않아 도심인의 한강 이용을 저해 한다고 한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꽤나 설득적인 말이라 생각했는데, 야시장을 다녀온 이후로는 설득적인 말을 넘어서 상당히 맞는 말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여의도 한강 공원은 다른 한강변 대비 접근이 그리 어렵지 않은 곳인데 그곳에 문화 공연에 맛있는 음식, 각종 재미난 물건들을 파는 이동식 상점들을 배치해 놓아 사람들이 보고 즐길 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야시장이다. 그러니 그 늦은 밤에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나와 즐기는 것이 당연. 요즘 같이 더운 여름에 서울 시민에게 시원한 강변만큼 즐기기 좋은 곳이 또 얼마나 흔하겠는가.
그런데 또 한 편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한강이 저렇게 북적북적 해도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의도 한강 공원이 아닌 내가 평소에 즐기는 동네 생활권 한강은 조용하고, 숲이 우거진, 그러나 사람은 많지 않은 산책로의 기능을 하는데 보통 나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거나 정말 운동이 필요할 때 또는 혼자 있고 싶을 때 한강에 간다.
그런 한강은 조용한 게 좋다.
어쨌든 북적거리는 한강이든, 여유가 넘치게 조용한 한강이든 요모조모 참 고마운 한강. 도시를 계획하는 분들이 부디 이 좋은 곳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도심인의 활용 목적에 맞게 개발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밤에도 별 다른 일이 없다면, 과일 몇 조각에 씹을 거리 조금, 시원한 맥주 한 캔 들고 늘 같은 곳에서 물처럼 잔잔한 여유를 주는 한강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