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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알리기 문화탐방 취재일지
무령왕릉을 다녀왔어요
문화리더 이름 : 윤정연
문화리더 학교 : 인수중학교 2학년
취재 장소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로 1번
취재 제목 : 무령왕릉을 다녀와서
1. 취재 동기 : 무령왕릉이 백제의 무덤 중에서도 최초로 이름이 있었던 무덤으로 유명해서 다녀왔다.
2. 문화재 취재내용 : 무령왕은 동성왕의 아들로서 백제 사람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무령왕은 키가 8척이 넘고 눈이 너그럽게 생겼다고 전해진다. 무령왕의 업적으로는 22담로를 설치하고 왜에 5경박사를 파견했다. 무령왕릉은 1971년 여름, 송산리 5호무덤과 6호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무령왕릉은 다른 무덤과는 달리 도굴당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또한, 무덤의 주인공을 알리는 묘지석이 발견됨으로써, 백제의 무령왕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무령왕릉의 내부는 널방과 널길로 이루어진 한칸무덤이다. 외부에는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천장의 모양은 아치형이였고, 천장에 사용되었던 벽돌들은 사다리꼴 모양이다. 벽면에 축조된 벽돌은 세워 쌓는 벽돌 2개가 합하여 한 송이의 연꽃 모양이 완성되도록 하였음을 볼 수 있는데, 이로 보아 무덤의 축조 전에 이미 치밀한 계획을 세워 공사를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무령왕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같이 들어있다. 왕이 죽은 뒤 무령왕릉에 묻고 3년 뒤에 왕비가 죽었을 때에 다시 땅을 파서 왕의 무덤 옆에다가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토유물은 모두 4,600여 점에 이르고, 연도 입구에서 동발과 청자육이호, 지석(誌石) 2매와 오수전 한꾸러미, 석수 등이 발견되었다. 왕과 왕비의 목관이 동과 서에 따로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무너져서 서로의 유물이 겹친다고 한다. 그리고 왕과 왕비의 머리맡에 많은 유물들이 있다고 한다. 무령왕릉이 발굴되고 1972년 전까지는 무령왕릉을 개방해놓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훼손시켜서 1972년부터 무령왕릉의 개방을 금지했다고 한다.
3. 취재도중 만난 사람과 인터뷰 : 외국인 영어해설을 하시는 김명순씨와 인터뷰를 했다.
-질문 1 : 이곳에 외국인들이 자주 오나요? 자주 온다면 무엇을 제일 궁금해하나요?
답 : 많이 옵니다. 외국인들은 무령왕릉에 들어있었던 유물을 제일 궁금해합니다.
-질문 2 :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을 짓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답 : 무령왕이 죽기 17년전부터 짓기 시작했다고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4. 느낀 점 : 무령왕릉의 실제 내부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무령왕릉의 복제품을 봐서 신기했다.
5. 문화재를 찾아가는 교통편 :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 공주종합버스터미널(약 1시간 30분, 8000원)
– 서울남부터미널 → 공주종합버스터미널(약 1시간 30분,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