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무척 푸르고 아름답다. 종이는 하얗고 나의 시간은 음악과 함께 늘상 즐겁고, 저 유유한 한강 물결처럼 시간은 끝없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의 일을 해줄 것이며, 내가 나의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의 일을 해줄까? 인생길 언제나 마이 웨이이다.
나는 ‘글’에 묶인 사람이다. 하루에도 늘상 글을 쓰고, 글을 통해서 사람과 만나고 마음을 공유하고 느낌을 전달하고 주고받는다. 이게 나의 소중한 교통의 가치이다. 교통이 고통이 아닌 ‘기쁨’일 수 있는 이유는 ‘상호 가치 인정’에 있다.
교통(交通)은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교(交)는 춤을 추는 몸짓을 형상화했고, 통(通)은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본떳으니, 내가 사는 동네 ‘세계거리춤축제’와 어울리는 한자라고 할 것이다. 교통(交通)은 신과의 소통(交)과 사람끼리 소통(通)을 동시에 의미한다. 교통은 서로가 길로 연결되어 통하는 것이다.
‘주고받음’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은 서로 어울리는데, 또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은 서로 다툼의 형상을 이루기도 한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썩 아름다운 이웃이 아니듯 그러하다. 소통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러나 소통이 가끔은 ‘고통’으로 결론날 때도 있다.
나는 ‘마이 웨이’를 참으로 좋아한다. 내가 나의 일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의 일을 대신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소중한 일이며, 가장 편한 일이다. 더불어 내가 마음이 통하는 일을 내가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내가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의 일을 해주는 것도 그러하다.
나는 글쓰는 것이 좋고,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좋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 이러한 만남이 ‘인터뷰’로 진행되기도 하고, 취재활동으로 만나기도 하고, 책쓰는 일이나 ‘강연’으로 만남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것이 어떠한 만남이든, 나는 그 속에서 좋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
좋은 사람과 만남을 좋아하고, 나아가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 그 일이 명분있고, 실익이 있고, 그 사람과 약속이 진실하게 이행된다면 나는 그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본다. 아주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사람들과 일함에 있어서 ‘약속 지키기’를 아주 고지식하게 고집한다. ‘실익’과 ‘의리’의 갈림길에서 의리를 선택하려고 늘상 몸부림친다.
나는 언론인이다. 취재활동은 언론사마다 다양하고, 특징도 각양각색이다. 글쓰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고, 핸드폰 사진 촬영법이 보편화된 요즘, 글과 사진이 조화로운 기사는 매우 많다. 그 안에서 내가 살아남는 비결은 ‘나의 특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면 결국 거대한 세상속에 묻힐 수 밖에 없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군중의 무리’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의 일에 몰입하고, 누군가 나를 ‘나의 무언가’로 특징지을 수 있도록, 나만의 고유한 개성적 색깔로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나의 이름이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마이 웨이, 나의 색깔을 고집한다.
마이 웨이의 다른 말은 ‘나의 철학’, ‘나의 삶의 기준’이다. 어떤 사건을 결정함에 있어서, 내가 지켜온 삶의 원칙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고, 선택의 방향을 결정한다면 나의 길은 교통체증이 없다. 막힘도 없다. ‘실리’는 늘상 뒤로하고, 내가 유지해온 ‘약속의 차선’을 고집하면, 이 차선은 막힘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약속의 차선’을 꾸준히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마이웨이이다.
파란색이 파란색이어야, 빨간색과 주홍색과 노랑색과 초록색과 남색과 보라색들과 어울려 무지개를 만들 수 있듯이, 나의 색깔이 나의 색깔로 특징지어져야 공동체의 아름다운 삶의 컴뮤니티가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