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 지음 / 출판사 푸른숲)
힐링(healing) 이라는 단어가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있는 요즘이다. 인기를 좀 얻는다 싶더니, 꽤 오랫동안 대중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 사람들의 마음이 힐링 즉 치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 둘, 쏟아져 나오는 힐링의 답들이 썩 쓸모 있지는 못하다는 것.
이 모든 상황에 대한 키워드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깊이. 마음에 병이 찾아오는 것은 우리가 평상시에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힐링의 처방으로 나오는 답안들이 덜 효과적이라 느끼는 것도, 그 답안이 근심의 근본까지 파고들지 못하기에 때문이다. 누구나 생각을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표면적인 원인은 본인이 찾아내곤 한다. 마음의 병이 ‘병’인 이유는 그런 표면적인 고민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의 껍데기를 벗겨줄 무언가. 우리가 힐링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찾는 것은 그 무언가이다.
힐링, 마음의 병, 깊이. ‘당신으로 충분하다’는 내적 고민의 대한 이런 일련의 키워드들을 모두 아우른다. 상담사인 저자와 내담자 4명의 대화록, 거기에 메모처럼 삽입되어 있는 상담자의 글. 내담자 4명과 6주간 진행되는 집단 상담을 편집하여 책으로 담은 단순한 구성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간단한데 깊고, 짧은데 무겁다.
누가 그랬다. 진실은 불편하다고. ‘당신으로 충분하다’는 따뜻한 제목과, 둥글둥글한 표지디자인과 다르게 ‘불편한’ 책이다. 4명의 내담자가 대화 속에서 내놓는 각자의 생각들이 마음을 울컥, 하고 건드린다. 서로는 물론이고 나와도 너무나 다른 삶을 사는 4명에게서 ‘나’를 보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깊이 숨겨진 나의 내면을 까발린 듯, 부끄러워지곤 한다.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내담자들이 마음에만 품고 있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질문들. 따뜻한 말투 속에 예리한 관점이 스며있다.
생각의 껍데기를 벗겨줄 무언가를 찾고 있는 요즘의 우리. ‘당신으로 충분하다’는 껍데기를 넘어서 마음의 중심까지 묵직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깨달음을 넘어서 넌지시 평안을 건넨다. 매일매일 감정과 생각을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당신께 깊은 진심으로 권한다.
아래의 캘리그래피는 책 본문 중 한 부분을 옮겨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