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동중학교 학생기자단 / 이채은, 윤준영, 김여름
동아리는 ‘함께 동'(同)으로 함께 활동하는 모임이다. 동아리 활동이 살아 숨쉬는 영동중학교는 명문학교이다. 이번에 영동중학교는 ‘문학과 역사’가 함께 융합하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문학기행-서울, 문학둘레길을 걷다를 실시했다. 학생들은 한국의 문인들이 걸어간 삶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하숙집을 직접 보면서, 문학은 역사와 현실속에 지금도 살아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모든 역사기행을 마친 후, 영동중학교 학생들은 모두 작은 시인, 작은 작가가 되어서 문학작품을 써서 발표까지 진행했다. 이렇게 풍요로운 가을 문학이 있을까?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다. 영동중학교는 ‘책쓰는 계절’로서 문학을 여행한다. / 편집자주

문학 여행기 / 이채은, 윤준영, 김여름
1. 윤동주 시인을 따라 문학기행을 떠나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남긴 윤동주 시인을 따라 우리는 문학기행을 떠났습니다.

▲ 떠나기 하루 전 사전교육 (시청각실)
2016년 10월 15일 토요일에 영동가족 54명의 학생, 6명의 교사들은 제4회 문학기행, “서울, 문학 둘레길을 걷다”를 다녀왔습니다. 문학기행은 우리 민족의 문학유산과 아름다운 삶을 남기고 간 문학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입니다. 2013학년도 제1회는 황순원 작가님, 2014학년도 제2회는 이효석 작가님, 2015학년도 제3회는 김유정 작가님에 관한 기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제4회 문학기행으로 윤동주 시인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 서촌 주변을 서초구청과 종로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소설가와 함께하는 기행이었지만, 이번에는 시인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새로운데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따라 문학기행을 떠나기 몇 주 전부터 사전모임을 가지며 윤동주 시집과 영화<동주>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유했습니다.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문학기행 당일 9시30분까지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만나 황수현 선생님께서 만드신 개인 미션지와 행운 번호를 받고, 기행의 출발을 알리는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문학해설사 여섯 분이 오셔서 9명씩 6모둠으로 나누어 걸었습니다. 저희 모둠이 제일 먼저 간 곳은 통의동백송터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집터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송(자라면서 껍질이 벗겨져 흰색을 띄는 나무)이 자라던 곳이라고 합니다.
천연기념물로까지 지정되었던 나무가 태풍 피해를 입고 나서, 특히 그 동네 주민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살리기 위해 힘썼지만, 나무가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린 백송들을 다시 키우고 있다고 하니, 그 어린 백송들이 빨리 잘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여행지는 보안여관입니다. 안타깝게도, 주말이라 문이 열려 있지 않아서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밖에서만 여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안여관은 1930년대에 문을 열었으며, 주로 지방에서 올라온 예술가들이 머문 곳이라고 합니다. 선배와 친목 도모도 할 수 있었고, 문학인들의 교류의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종로에 출판사가 많기도 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꿈을 키우는 장소가 되었을 법한 이 곳에 서정주시인과 이중섭화가도 머물렀다고 하네요!
2.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을 가보다
다음으로 세종대왕나신곳을가보았습니다. 위의 비석이 매우 평범한 길거리에 세워져 있어 조금은 웃음이 났었습니다. 사실은 이 동네 근처에서 태어나셨는데, 특정 집 앞에 세울 수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길에 세워졌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왕이라면 당연히 궁에서 태어났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도 새로웠습니다.
세종대왕은 1397년 5월 15일 한양 북부 준수방(지금의 통인동, 옥인동) 잠저(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진 안에서도 “서울 북부 준수방(이 근처)에서 겨레의 성군이신 세종대왕이 태조 6년(1397)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418년 8월 10일 22세에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은 1443년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28글자를 창제하여, 1446년 10월 9일 훈민정음을 반포했습니다. 한글은 글자를 만든 사람과 만들게 된 취지, 문자의 원리 등이 전해지는 유일한 문자라고 합니다. 또한 다른 어느 문자들보다 가장 방대한 양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기에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문자라고 극찬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말 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더욱 잘 지켜 나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혹시 ‘이상’이라는 시인의 시를 읽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읽어 보았다면 분명 공감하실 테지만 그의 시는 정말 의미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합니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 속에 빠져들던 우리가 이상시인의집터를방문해보았습니다.
안에서는 옷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뼈대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집은 이상의 큰아버지 댁이었고, 이상이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입니다. 또한 이 곳의 한옥 흔적을 헐고 다시 건물을 짓겠다고 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반대했고, 그래서 살아남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네 주민들에 대한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상, 윤동주, 김소월 등 시인들에 관한 자료를 실은 “문학사상”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상의 집 지붕 모습
3.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에 도착하다.
골목골목 많은 디저트 가게와 빵 가게를 지나 드디어 윤동주 하숙집에 도착했습니다. 윤동주는 1938년 입학한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졸업 할 즈음 이곳으로 와서, 훗날 윤동주의 시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정병욱과 친구처럼 지내며 같이 하숙을 시작합니다. 1년이 채 안 되는 10개월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대표적인 시가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또한 이 곳은 윤동주가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었다고 하네요.
이 하숙집은 윤동주 시인의 시상의 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등 그의 존재감을 묵묵히 드러내는 아름다운 별 같은 시들이 이 곳에서 쓰였습니다. 아무래도 그 까닭은 하숙집 주인인 소설가 ‘김송’의 기운 때문이오, 함께 머물렀던 정병욱 덕분이오, 그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때는 일본의 탄압이 거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였고, 이제 연전 졸업을 앞 둔 그에게는 무척 고민스러울 시기였을 것입니다.
정병욱과 매일 아침 산책을 하러 밀었을 하숙집 대문에 조심스레 손을 대어 봅니다. 정병욱과는 서로 흉금을 터놓는 지기라고 합니다. 그와 함께 아침을 먹기 전에는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산책을 하며 머릿속에서 시상을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고 다듬고서야 원고지에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 시가 풍화작용 된 고운 모래알 같을 수밖에 없나 봅니다.
‘일어 상용’의 암흑기였던 그 시대와 연전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하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민족사상의 기초 위에 문학을 할 수 있게 해준 연희전문학교를 떠나고 이제는 자신의 진로를 찾아야 하니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하지만 이런 삶의 고찰이 있었기에 나는 그 아름다운 시들이 쓰여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르막길을 조금 걸어 도착한 이 곳은 수성동 계곡입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조선시대 소설<운영전>, <수성궁 몽유록> 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산책 코스에는 수성동 계곡이 있었을까요? 달빛과 가을과 바람이 만난 수성동 계곡을 그는 보았을까요.
원래는 이 곳에 아파트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철거 하고 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나왔고, 그 풍경을 근거로 정선의 그림을 복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로 앞에는 인왕산이 보이고, 여기에 흐르는 계곡물이 청계천까지 간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4. 내리막길로 우당기념관을 향하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우당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우당기념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문 끝에 순국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곳입니다. 주말마다 역사교실이 열리며, 사진과 유물이 전시 돼 있다고 합니다. 우당 집안 6명의 형제는 재산으로 독립자금을 마련 하여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가문입니다. 무정부주의자로, 역사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일을 한 분들입니다. 해설사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한 일을 정리하고 되돌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한 일도 뜻 깊게 보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5. 송강 정철의 집터와 경복고등학교
다음은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1536-1593)의 집터입니다. 지금은 청운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철은 어릴 때 왕과 친구여서, 궁에 놀러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정치인이자 문학가라고 할 수 있는 정철의 작품으로는 대표적으로 <관동별곡>이 있습니다. 강원도의 좋은 경치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죠. 아직 배우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필수로 공부해야 할 문학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일정엔 없었지만 지나가다 둘러보게 된 경복고등학교입니다. 경복고등학교는 1916년에 개교한 고등학교로, 역사가 어마어마한 고등학교입니다. 안에 들어가보니 학교가 정말 넓었고, 운동장도 정말 넓었습니다. 학교 안을 구경하다 보니 경복고등학교 안에 겸재 정선의 집터가 있어 매우 신기했습니다.
또, 역사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학교에 보호수가 있었는데, 200여년 된 것부터 심지어는 565년 된 보호수도 있었습니다!
6. 윤동주 문학관에서 만난 윤동주
다음은 윤동주 시인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배울 수 있었던 윤동주문학관입니다. 문학관에서는 문학관 해설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 문학관은 원래 아파트에 물을 공급하던 물탱크와 가압장이 있던 곳을 문학관으로 재건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1전시실에서는 시인의 삶과 그의 여러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고, 그가 좋아하던 시집이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의 초판본도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1전시실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에 우물의 일부가 전시되었다는 점인데요, 이 우물은 시인의 고향에서 발견되었으며, ‘자화상’이라는 윤동주 시인의 시의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되어 이곳에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던 우물을 보게 되니, 그의 시상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또 각 나라에 윤동주 시인의 팬클럽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인기가 많고 인정받는 시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랑 받는 시인이라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열린 우물이라 불리는 제2전시실은 물탱크를 개조하여 만든 공간으로, 윤동주의 ‘자화상’ 이라는 시를 모티브로 하여 우물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천장은 뚫려 있으나 사방이 막혀져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윤동주 시인이 받은 자유에 대한 탄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전시실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와 그 시의 시화를 그리는 대회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하나하나가 모두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닫힌 우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3전시실은 사방이 막혀 있어 시인의 고뇌를 나타내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닫힌 우물 속에서 우리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영원한 청년 시인으로 남게 된 그의 삶이 안타까웠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 년만에 광복을 이루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마음이 아팠습니다.
7. 우리는 작은 시인, 작은 작가
윤동주 문학관 근처에 위치한 최초 한옥 공공도서관인 청운도서관도방문하였습니다. 2층은 한옥, 그 아래층은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도서관입니다.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이 매우 아름답고 한국적인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도서관 안에는 시를 한 편 읽을 수 있도록 시 두루마리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개인시, 모둠시를 창작하는 시간에 조별로 이곳을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우리가 열심히 걸어온 문학 둘레길에서 배운 역사적 사실, 옛사람들의 정신과 느낀 점을 담아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오는데, 서울이 보이는 언덕 위에서 우리들은 창작시들을 발표하며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몇몇 친구들의 멋있는 장기자랑으로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 발표를 통해 정말 각각 느낀 것도, 시의 소재로 삼은 것도 다양하고, 시로 정말 잘 담아 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 한 명 한 명이 작은 시인이고 작은 작가다”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 시간이었습니다.
문학 둘레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그저 문학 만이 아닌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서촌에 장애인관련 서비스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러한 시설을 갖춘 곳이 더욱 많아져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너무 유명한 가게, 예쁜 가게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예쁜 가게들

▲유명한 중국집

▲유명한 서점(대오서점): 이제는 대를 이어 카페로 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갤러리도 많았고, 벽화로 예쁘게 꾸며져 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어 뜻 깊고, 즐거웠던 문학기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사후 활동을 잘 마무리해서, 전시회를 통해 저희가 이 곳에서 배우고 느낀 것이 우리 영동중학교 학생, 선생님들에게도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8. 작품 전시회 및 해단식
그럼 마지막으로, 사후 활동입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잘 담긴 결과물을 삼 일에 걸쳐 제작했습니다. 모둠별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서로가 협동해서 삼 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작품들을 완성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학생들은 문학기행 중에 찍은 사진들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사진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내용을 채웠습니다. 또, 종이를 자르고, 매직, 데코풀, 물감, 반짝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이제 이 작품들은 학교 중앙현관에 전시하게 됩니다.

백일장 장원 3학년 4반 배유진의 시화 작품

백일장 및 워크북 수상자들

그리고 10월 20일, 우리는 우리들의 작품 앞에서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으며 해단식을 하였습니다. 백일장 우수작품과 개인 활동지 수상자들을 시상했고, 열심히 한 우리들 모두가 문학기행 기념품을 받으며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기행의 종착역에 다다랐지만 앞으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길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3학년 이채은, 3학년 윤준영, 2학년김여름이었습니다.
문학기행을 ‘기획’에서 ‘전시회 및 출판편집’까지 완성시킨 선생님들 / 임수연, 이금숙, 박서현, 차명주, 이현숙 선생님
< 에필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