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구검은 깊은 묵시를 담고 있는 사자성어이다. 옛날 초나라 청년이 귀한 보검을 등에 메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바람이 불었고, 배가 흔들리면서 보검이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그 청년은 허리춤에서 작은 칼을 꺼내서 보검이 빠진 위치에 표시를 했다.
배가 반대편에 모두 도착하자, 표시해둔 쪽으로 뛰어들었으나 강물속에는 보검이 존재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배에 표시를 해둔 어리석은 초나라 청년의 사건을 비유적으로 함축한 사자성어가 ‘각주구검’이다.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구시대 사람들을 비판한 내용인데, 그 이면에는 거대한 문명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다’정저지와(井底之蛙)도 같은 맥락이다. 전체를 못 보고 부분만을 보는 사람의 맹점은 핵심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초나라 청년은 정확히 보검이 떨어진 방향에 표시를 했지만, 배가 움직이고 있음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배와 강물의 2가지를 파악해서 각각 구분해서 인식했어야 한다. 즉, 보검이 떨어진 그 순간 그것을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대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땐 통했는데 왜 지금은 통하지 않을까? 그때 표시한 곳이 바로 보검이 묻힌 것인데 왜 그 표시에 보검이 없을까? 흐르는 강물 때문이다. 시대를 따라, 나라를 따라 문명과 문화가 각각 다른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유명한 명언이 있듯이 시대에 따라 거기에 맞춰서 문명의 강물은 달라진다. 그게 문명이고, 그게 문화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편협한 배에 표시를 하고서 전체의 보검을 찾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검을 찾으려면 ‘전체’로서 파악해야한다. ‘숲을 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말이다. 숲을 봐야만 나무들의 어떠함을 알 수 있다. 숲을 못 보면 나무들속에서 늘상 헤매는 것이다. 숲은 곧 ‘연역법’이다.
연역법과 귀납법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연역법은 위에서 풀어가는 것이고, 귀납법은 밑에서 찾아가는 것이다. A를 찾아가는데, 그 방향과 방법이 다른 것이다. 가령, B라는 인물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 인물의 성격, 취미, 철학 등등 인물에 해당하는 것을 조사하는 것은 귀납적 방법이고, 가문과 학연과 가족과 국적 등 그 인물을 포함하는 전체를 통해서 그 인물을 알아가는 것은 연역법이다. 연역법은 반드시 ‘전체’에서 ‘부분’으로 진행하고, 귀납법은 ‘부분’에서 ‘전체’로 진행한다.
“올해 대통령에 누가 당선될까?”라는 질문이 있다고 하자.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얻는 방법은 2가지다. 첫째 대통령에 당선될까에 해당하는 질문을 각 유권자들에게 물어보고 설문조사를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전형적인 ‘귀납적 방법’이다.
반면, 올해 대통령을 포함하는 정치의 흐름과 과거 역사, 주변국의 정치흐름, 경제흐름 등을 종합해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 분석한다면 그것은 연역법에 해당한다. 똑같은 답을 찾을지라도 귀납법과 연역법은 전혀 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각주구검(刻舟求劍)과도 같다. 보검의 위치를 찾는데 있어서 ‘배’에 표시를 하는 경우와 떨어진 강물을 파악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부처님 손바닥위’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뛰어도 벼룩이라는 말도 있다. 손오공이 아무리 뛰어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은 지구행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인생이 권력의 산을 정복해도 그 기간은 대략 100년을 넘지 못한다. 사람은 결국 ‘배’위에 존재할 뿐이다. 강물은 언제나 영원한 신의 영역이고, 그래서 사람은 그 판단에 착오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자기가 옳은 것 같으나, 전체의 강물로 해석하면 그것이 틀릴 수도 있으니, 시대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함을 깨닫는다. 시대 흐름은 문명과 신의 역사를 함께 고려할 때 ‘보다 정확한 보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문해석은 각골난망(刻骨難忘)에서 해석한 한자를 제외하고,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 주(舟) : 배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 검(劍) : 모두 첨(僉)과 칼 도(刂)가 합쳐져서, 양날이 모두 칼인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