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자유칼럼, 장창훈]=통통한 고등어가 날 찾아왔다. 나눔의 미덕으로 제주산 고등어와 갈치를 선물로 받았다. 고등어는 ‘高刀魚’(고도어)가 고등어로 변형되었다. 칼날처럼 등이 높게 솟은 고등어는 청춘남녀 한국밥상의 주메뉴다. 나도 고등어와 갈치를 무척 좋아한다.
고등어처럼, 때론 비판의 날카로운 칼날위에서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살아가기도 한다. 날카롭게 뱉어지는 기침이 그렇다. 잠을 자려면 기침이 나오고, 기침이 멈추면 잠이 쏟아지고, 이러한 반복으로 며칠 눈 주변이 몽롱했는데, 고등어를 보니, 집밥 해먹기로 다짐한다. 해바라기 기름과 후라이팬을 꺼내고, 분업(分業)은 전기기계의 탁월한 능력이다. 고등어를 굽는 그 동안에 압력밭솥은 내가 먹을 10숟갈 분량의 밥을 열심히 익힐 것이다.
자주 식당에서 먹었던 그 고등어들과 색깔이 다르다. 족보가 있는 고등어인 것을 대번에 알 수가 있다. 칼날을 높게 세우며, 제주 앞바다를 누비면서 얼마나 푸르게 살았을까, 지글지글 굽어가는 고등어를 보면서, “엎치락 뒤치락” “등이 보였다가 숨겼다가”, 며칠밤 잠을 설친 한 청년의 모습처럼 이리저리 요리조리 시간을 굽는다.
고등어의 어원은 ‘높은 칼을 닮은 고기’(高刀魚)이지만, 지금은 고등어가 되었으니, 등이 높은 물고기이다. 등이 높다는 것은 강직함의 상징이다. 등이 반듯해야 그 사람은 정직하고, 진실하다. 높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소신을 지키면서, 태평양에 속한 어느 바닷가의 물속에서 재능의 지느러미를 유유히 날개치며 살아가는 그 삶, 파도치면 파도따라 그렇게 살아가는 올곧은 삶, 그것이 고등어가 아닐까싶다.
10번 정도 열심히 굽고, 약한 불에 서서히 익히니, 노릇노릇해졌다. 압력밥솥도 김을 내면서 맛있는 한공기 밥을 차려낸다. 많은 반찬보다 영양가있는 반찬 1~2개면 그날 밥상은 진수성찬이다. 오늘은 ‘고등어’와 ‘밑반찬’이다. 고등어는 살이 군데군데 갈라지면서 먹기좋게 구분되는 것이 ‘인기비결’이다. 제주산 고등어는 껍질에 작은 알갱이까지도 부서지지 않으면서 맛이 쫄깃하다.
곳감이면 곳감, 고등어면 고등어, 옷이면 옷, 모두 작품은 작가의 사상을 반영한다. 제주산 고등어도 역시나 제주도의 푸른 바닷가에서 자랐고, 또한 어떤 어부의 손에서 맛있게 조리가 되어서 포장이 되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홈플러스로, 홈플러스에서 장안동으로, 장안동에서 지금 내 밥상위에 오기까지의 긴 유통채널에서 그 싱싱함이 살아 꿈틀거리는 맛깔스러움은 어느 고등어와 다른 특별한 별미다.
** 오늘은 과식하지 않고, 고등어 반쪽으로 저녁을 채웠다. 설거지는 식사후 빠를수록 편하다. 물과 기름을 먼저 분리하고, 큰그릇 작은그릇 쓱쓱 씻으면, 몇분만에 싱크대는 질서를 유지한다. 내 밥그릇 내가 안 씻으면 누가 씻으랴. 고등어처럼 등을 곧게 하고, 또 내가 가야할 목표의 방향을 재점검하면서, 오늘 하루 남은 여정에 희망의 헤엄을 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