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함께 하는 문화
기록리더: 윤혜성
기록리더 학교: 서울 마장중학교
영화: 택시 운전사
1. 취재동기
이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의 내용은 약간의 허구도 존재하겠지만 실제 독일 기자였던 힌츠페터 씨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 택시 운전사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의 일화를 얼핏 들었던 적이 있다. 외신기자를 도와 광주의 슬픈 역사를 세상에 알리는데 도움을 준 택시 운전사 ‘김사복’씨가 바로 이번 영화의 주인공 이였다. 나는 평소에 역사를 다룬 영화를 즐겼다. 그 중 ‘택시 운전사’는 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영화 중 하나였다. 그래서 특별히 탐방일지를 문화재가 아닌 이 영화에 주목하여 쓰게 되었다.
2. 취재내용:
<영화 ‘택시 운전사’>
(줄거리)
영화 택시 운전사는 택시 운전사 만섭이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거금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 피처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게 된다. 겨우 검문을 뚫고 들어간 광주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하였다. 광주 사람들도 영문도 모른 채 하나 둘 죽어 나아가고 그저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계엄군은 무참이 때리고 총을 쏘며 강제 진압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런 참혹한 현실을 두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닫기 시작하였다. 검열 때문에 모든 신문사들은 광주의 이야기를 알릴 수 없고 외신 기자들 조차도 감히 광주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선 독일 기자 힌츠 페터는 광주에 가 당시 광주를 촬영하고 취재를 이어나가는 내용이다
<등장인물>
이 영화에는 나오는 등장인물 그리고 내용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여기서 나오는 실제로 존재 하였던 등장인물들을 집중해보게 되었다

송강호(김만섭 역)-

토마스 크레취만 (위르겐 힌츠 페터역)
–김사복(극중 이름: 김사복)
김사복 씨는 실제로 영화의 김만섭처럼 택시 운전사였던 분이다. 김만섭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도왔던 인물로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김사복’이라는 이름 세 글자만 알려 주었다고 한다.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는 지난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 당시 “용감한 한국인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고 김사복 씨를 언급 하면서 일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실제 영화 촬영 전에 제작진이 택시 협회에 그때 당시의 김사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을 다 조회했는데 찾지 못했다고 못하였다. 아마 가명을 쓰지 않았나 라는 추측이 나왔다. 만약 김사복 씨가 살아있다면 그는 현재 60세가 넘은 나이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김사복 씨의 생사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푸른눈의목격자’ 위르겐힌츠페터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힌츠페터는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함부르크 지국의 방송 카메라맨 소속이다. 1967년 초 홍콩의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받아 베트남 전쟁을 취재 하였다. 1973년 도쿄 지국으로 옮겨 89년까지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1980년 5월 일본 특파원으로 재직할 당시 광주로 들어와 목숨을 걸고 계엄군에 의한 참사 현장을 기록, 독일 본사로 보내 광주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처럼 위르겐 힌츠 페터 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희생하며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한국인의 양심을 깨워 민주화를 앞당겼다. 이 공로를 인정 받아 2003년 11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 5월, 광주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0·26 사태 이후 국민들은 우리나라에도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필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였다. 1979년 12월 12일에 국군 보안 사령관 전두환 일행이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자신의 상관들을 내쫓고 정권을 장악하는 12.12사태가 일어났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전두환의 정권 장악 야욕이 한층 명백해지자,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으며, 5월 15일에는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서울역 앞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이른바 ‘서울의 봄’이라는 부르는 대규모 시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자진 해산된 대규모 시위와는 다르게 광주 지역 전남대는 체포를 피하여 시위대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1980년 5월에 전남대 학생들이 공수부대가 지키고 있는 전남대 앞에서 거두 시위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신군부 세력은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권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 5월 18일에 전라도 광주 땅으로 계엄군을 파견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였다.
이에 격분한 광주 시민들이 격렬히 저항했고, 신군부는 총칼까지 동원하여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참혹하게 살해하는 만행이 이어졌다.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의 만행에 항거하여 일주일 동안 서로 어깨를 걸고 끝까지 투쟁하였으나, 역부족으로 폭압적인 계엄군의 총칼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 투쟁 정신과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마음이 이어져 끝없는 노력 끝에 6월 민주 항쟁에서 직선제 개헌에 성공하게 된다.
3. 느낀 점:
나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가슴이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화 관람객들도 같은 기분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 1980년 5월의 광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글로 보는 역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나도 역사를 배우고 책을 통하여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듣고 우리의 아픈 역사라고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것을 영화로 보니 충격적이면서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글로 보는 상황이 아니라 영화에서는 배경, 상황 등을 떠나 당시 시대와 광주 시민들의 감정과 정신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광주 사태에 대해서는 특히 검열이 심했다. 외신기자들 조차 보안부에 끌려가고 제제를 받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힌츠페터 기자는 다른 나라의 일이지만 누구보다 나서서 알리고자 하였다. 나는 힌츠페터 기자에게 엄청난 고마움과 감동도 느꼈다.
아픔뿐만 아니라 알아야 할 점은 당시 시민들의 희생이다. 당시의 수많은 피와 땀이 있었기에 우여곡절이 있던 근대사 이후 지금의 우리와 민주주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자유, 그리고 민주적인 시대를 얻게 해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주의가 완벽하진 않다. 따라서 우리도 더 나은 시대를 위해 그들을 본받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다른 시대적 교훈을 남기는 근대사 영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