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은 히틀러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유럽의 좁은 골목길을 맘껏 다닐 수 있는, 가볍고 성능좋은 차! 히틀러가 주문한 내용이다. 포르쉐 박사가 비틀을 개발했고, 60년간 3천만대를 판매하는 경이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비틀은 작고 귀엽고 성능이 좋다보니,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다. 미국 수입차 70%가 비틀이었다. 이렇게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비틀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갑자기 “더 크고 비싼 고급차”에 손을 댄 것이다. 비틀이 가지고 있던 그 이미지, 작고 깜찍하고 성능이 좋은 차와는 정반대 이미지였다. 고객들은 ‘물음표’를 던졌다. 농구선수가 갑자기 축구화를 신고 나타난 것과 같았으니, 농구팬들이 과연 축구장으로 몰려갈까? 실용주의 대명사였던 비틀은 ‘고급차 이미지’로 천천히 쇠락의 길을 걷더니, 1990년대에 미국 수입차 점유율 3%로 추락했다. 본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정반대 마케팅을 한 결과가 이렇다. 고객이 가지고 있는 비틀과 전혀 다른 비틀이 출시되면서, 기업 이미지 가치가 훼손된 것이다.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아우디 자동차 회사에 페르디난드 피치가 있었다. 피치는 포르쉐 박사의 손자였다. 피치는 할아버지가 개발했던 그 비틀의 경영권을 맡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왜 실패했을까?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묻고, 찾았다. 그리고 비틀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한 원인을 낱낱히 검토했다. 1년 후, 뉴비틀은 미국 디트로이트 모토쇼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이것이 뉴비틀이다. 본래 비틀이 가지고 있던 그 개념을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고객들은 과거의 향수가 느껴졌고, 밀레니얼 신세대에게는 색깔 마케팅을 통해 다양성을 선물했다. 색깔별 자동차 출시가 그것이다.
뉴비틀은 비틀에 대한 향수를 지닌 베이비 부머 세대와 신세대를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을 썼다. 비틀의 이미지를 간직하면서, 신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은 것이다. 레트로 마케팅, 컬러 마케팅, 인터넷 마케팅이다. 레트로는 ‘비틀’을 ‘뉴비틀’로 이름을 정하면서, 이미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 마케팅은 뉴비틀 웹사이트를 통해 고객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실제로 그 의견을 제품에 반영하면서, 고객 친화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입은 것이다. 컬러 마케팅은 다양한 색깔의 자동차를 출시한 것이다. 이후, 비틀즈가 건널목을 건너는 사진을 패러디한 뉴비틀 자동차를 보여주면서, “비틀즈처럼 뉴비틀이 건널목을 건너다”는 광고효과를 톡톡히 봤다.
정체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어떤 제품이 그 제품으로 시장에서 인정받고,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 정체성을 포기하면, 고객은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다. 고추를 찾는 이유는 굉장히 맵거나, 맵지 않아서다. 매운 맛을 찾는 고객에게 청량고추를, 맵지 않은 맛을 찾을 때는 오이 고추를 판매한다. 그런데 갑자기 ‘청량고추는 달콤해요’라고 한다면, 그 청량고추는 청량이 아닌 것이다. 이미 고착된 고객의 이미지는 쉽게 바꿀 수 없고, 바꿀 이유도 없다.
정체성 전략은 종교사회에서도 빈번히 일어났다. 천주교가 타락하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을 때, 루터는 초대교회 정신을 울부짖었다.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외면하고, 교회가 세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교회는 교회가 아닌 것이다. 그 정체성은 ‘소금’의 ‘짠맛’과 같다. 비틀이 크고 비싼 고급차를 추구했을 때, 비틀의 짠맛인 ‘작고 성능좋은 차’를 포기한 것이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버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