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수첩에 기록 / 12월 15일 작성.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춘천행 itx 열차를 타고 가면서) 떠남은 어떤 결별이다. 저곳에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예배는 내게 떠남의 훈련이다. 익숙한 일상들의 중력을 벗어나기까지 나는 몇번의 성층권과 열권을 부딪혀 충돌해야 한다. 그저 자고 싶거나, 또는 멍때리기로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싶은 유혹들을 물리치고, 지금, 춘천행 itx다.
예전에 듣지 못했던, 그보다 예전에는 들었던, 추억의 숨결처럼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기차 소리가 정겹다. 태양은 창문 옆에서 따사롭다. 몸서리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내 과거의 늪은 여전히 날 괴롭히지만, 단 하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에, 그 믿음의 동아줄을 온 몸에, 온 마음에 감는다. 이게 믿음이라면, 기꺼이 날마다 행하고, 결단하리라.
일주일이 하루처럼 흘렀다. 집이 옷을 입듯, 뿜칠을 하고, 집 내부 계단 밑에 뾰쪽 튀어나온 못을 때려 박고, 정화조 파이프를 자르다가 작업자가 오물을 묻히고, 그 옆에 나도 함께 있었다. 건축은 상당히 정교한 퍼즐 맞춤이다. 이러한 삶들이 내게 남겨준 결과는 ‘나’라는 집이다. 나는 집이다.
뾰쪽한 송곳을 찌르는 언행에 내 마음은 자주 다친다. 손톱에 가시가 박히듯, 그러한 단어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마음에 상처가 깊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은 하늘을 향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음의 칼을 관용의 칼집에 넣으리라.
춘천 한마음 교회에 도착했다. 김성로 목사님은 언제나 ‘성령님’께 주어를 넘긴다. 맞다. 이 교회의 목회자는 성령님이다. 그 존재는 실체다. 한사코, 연거푸, 힘을 주면서, 김성로 목사님은 자신을 쳐다보지 말고, 성령님을 의지하라고 강조한다. 예수님도 떠나시면서, 성령님이 온다고 했는데, 하물며 우리들 인간이랴. 내가 주인된 인생에서, 주님이 주인된 인생으로 바뀌려면, 그것은 성령님이 직접 행하실 때만 가능하다. 아멘!!
춘천 한마음 교회가 좋은 이유는 진솔함에 있다. 여기는 거짓이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은 “나는 거짓말쟁이였어요”라고 고백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군대귀신이 들렸었어요.”라고 과거를 참회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가정폭력을 당했어요”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바리새인처럼 지식으로 교만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과 만난 이후의 삶이 달라진 ‘부활의 증인들’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교회가 좋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 그 질문이 항상 모든 사람을 따라다닌다. 예전에 간증을 잘했더라도, 지금, 오늘, 요즘, 신앙이 다시 늪에 빠질 수도 있으니, 영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유용하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귀가 얇다. 시장에 가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소리에 팔려 물건을 사고 만다. 쇼핑중독도 귀가 얇아서 생긴 일이다. 자존감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나는 귀가 민감하고, 사람의 말에 쉽게 넘어간다. 그러다가 인생이 흘러 흘러, 그리스도에게로 흘러갔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귀가 얇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죠”라고.
예수님이 부활을 했다는 데, 이런 큰 뉴스가 들려왔는데, 그 장소가 미국 뉴옥이 아니고, 프랑스도 아니고, 저기 아프리카 코트디브아르도 아니고, 춘천이라는데, 내가 안 갈 이유는 없다. 도대체 어떻게 말씀을 외쳤길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살겠다고 작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단 말인가! 지금 21C에 말이다. AI가 지배하는 정보시대에 ‘초대교회 영성’이라니!!! 나는 그 사실이 몹시 궁금했고, 지금도 그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한동안 잊었던 ‘죽음의 그림자’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부활 그 소망’ 영화에서 천정은 자매님이 강하게 강조한 탓에 내 마음에 ‘죽음과 부활’이 타올랐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는 것이다. 내 삶에 파묻혀, 내가 죽는 존재임을 망각하고, 세상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으니…. 나는 화들짝 깨어났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날씨를 맨 먼저 챙긴다. 농부였던 내 아버지도 그랬다. 건축회사도 동일하다. 내일 비가 오려는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려는가, 그것이 정말로 중요했다. 날씨에 따라 건축공정은 바뀐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마음의 날씨는 살피지 않는다. 나는 내 마음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춘천 한마음 교회 예배를 통해 알게 됐다. 내 마음은 지금 상태가 어떠한가?
나는 자갈밭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성령으로 기경(起耕)당했다. 쟁기질을 한 밭은 씨앗이 뿌려질 것이다. 아멘!! 겨울철에 쟁기질을 마치듯, 집은 터파기와 콘크리트 타설을 통해 기초공사가 마쳐진다. 기초공사가 끝나면, 그때 집이 세워진다. 마음이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반듯하게 놓이면, 그때 영혼의 집이 세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