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구원’은 율법적 신앙이란 이유로 교회는 ‘행동’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가, 죄의 덫에 걸려도, 교회에 다니면서, 죄의 늪에 빠져도 그것을 사람들이 모른다. 본인조차 가면을 쓰고, 세례와 십자가를 붙들고 죄를 덮는다. 오랫동안 나는 이런 상태에 대해 고민했으나,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춘천 한마음 교회에 다닌 이후,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단상의 외침을 통해, 비로소 빛이 비추었다. 이것이 사실이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다.
오늘 예배에서, 한 성도가 말했다.
“내가 괴물이었어요. 주님을 믿는다면서, 아내가 쌓아둔 설거지 그릇을 보면서, 미움과 원망이 올라왔는데, 그런 내 모습을 내가 몰랐어요. 내가 아내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어요”
빛은 반사능력이 있다. 말씀은 태초의 빛이다. 성령의 빛이 그 성도에게 비추니, 자신의 내면이 훤히 드러났고, 그 성도의 간증이 또한 성령의 빛을 반사해, 내 모습이 드러난다. 나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삶이 개판인데, 어쩌랴! 어쩌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주님이 배가 고파, 열매를 얻으려고 갔던 그 무화과 나무는 열매가 전혀 없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열매가 내게 하나도 없었다. 온갖 세상의 자랑들이 주렁주렁 거봉포도처럼 열려있을 뿐, 주님이 원하는 그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 자주 엎드려 운다.
“결정은 찰나의 어느 순간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평생의 시간을 기반으로 내려진다. 누군가의 결정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그것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 드라마 ‘빌딩숲의 감시자들 2회’ 대사에서
선택의 순간들이 매일 나를 찾아온다. 어떤 것은 사소한 것이지만, 어떤 것은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뒤집어 놓는다. 매번 나는 후회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내 인생이기에, 내가 내린 결정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내가 평생 살아온 그 삶을 기반으로 내린 것이라는 드라마 대사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춘천 한마음 교회에 가려고 일어났으나, 매번 갈등의 철조망을 건너는 기분이다. 다녀온 지금, 그 결정은 잘 내렸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도착하자, 함께 있는 작교 식구들이 아무도 없다. 그럴때면, 나는 항상 2층 복도로 간다. 어김없이 그곳에서 일꾼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참새들처럼 재갈재갈 재밌게 산다. 귀를 열고 들어보려고, 나는 마음을 집중한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 “누구를 중심하느냐”가 가장 크게 들어왔다. 만약, 일꾼이 성도에게 “너 참 잘한다”고 말했을 때, 그 성도가 기분이 좋아지고, 일꾼이 다시 성도에게 “너 오늘 왜 그래”라고 했을 때, 그 성도가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 성도는 일꾼이 너무 큰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꾼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일꾼을 사람으로 본 탓에 말씀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촉매제 역할로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돕기 위한 징검돌인데, 그 징검돌을 건너 그리스도에게 가야하는데, 아직 건너지 못한 것이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를 진정 만났는가! 만났다면, 지금도 여전히 만나고 있는가!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17:1
이 말씀이 떠올랐다. 말씀앞에 비추어 내 삶이 오늘은 과연 어떠한가. 매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서 자신을 점검하는 삶을 산다는 것! 누군가의 티끌을 보면서 내 자신의 들보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비춤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아멘!!
김성로 목사님이 말했다.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삶의 변화입니다”라고.
작교 일꾼이 말했다.
“문둥병은 무감각입니다. 말씀에 반응하지 못한 것, 그게 영적으로 문둥병입니다.”라고.
어떤 성도는 사채업자로 일했는데, 부활의 복음을 만나고, 자신에게 생명과 같았던 장부책을 불태웠다고 한다. 마치 노예문서를 불태우듯!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불을 켠다. 계시록에도 일곱교회는 지구의 촛대로 비유된다. 지금의 언어로 환원하면, 교회는 지구의 가로등이다. 지구는 충분히 어둠이므로, 교회를 통해서 빛이 비춘다. 작교 식구들과 식사모임은 빛이 켜지는 시간이다. 각자 느낀 말씀의 반응들은 빛의 반사처럼 서로를 비춘다. 또한 삶속에서 살아낸 사건들이 누군가에게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 그러나, 정답을 알아도 정답이 아닐 때가 많다. 삶은 지식이 아니므로.
영화 독친(毒親)을 봤다. 독이 되는 부모라는 뜻이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는 엄마가 결국 자녀를 망친 주범이 된다는 내용이다. 많이 섬뜻했다. 그러나, 맞는 말이었다. 자녀 스스로 해야할 일이 있는데, 부모가 모든 것을 알려주니, 자녀는 가치관을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묶이고 만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녀를 방목하듯 키울 수도 없을텐데…..
일꾼과 교제를 통해, 참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관한 내용이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보내셨는데, 우리와 함께 살려고, 간섭하고 개입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님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인생을 인도하실까? 사람이 하려고 하니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성령님이 하시면, 완전히 새롭게 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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