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별초와 고인돌을 만나다
문화리더 : 안선희
문화리더학교 : 수완하나중학교
취재날짜 : 2018.8.18
취재제목 : 국립나주 박물관에 가다
1. 삼별초
나주박물관은 현재 특별전시회(삼별초)를 전시 중 이었습니다.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 때의 특수군대입니다.
몽골과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기능과 인원이 확대되어 우별초와 좌별초로 나뉘고, 이후 전쟁포로들을 모아 만든 신의군이 합세하면서 삼별초가 되었다.
강화도에서 패배하고 진도에서도 패배한 삼별초는 마지막 운명을 제주도에 걸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1273년 5월 삼별초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지휘부는 참수되었고 항복한 자들은 육지로 옮겨졌으며 마지막까지 삼별초를 이끌던 김통정은 한라산 까지 들어가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진다. 그렇게 강화도에서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도로 가기까지 40년에 걸친 삼별초의 여정은 끝나게 된다.
이후 삼별초를 진압한 원나라는 고려군과 연합군을 편성하여 일본침공을 준비했다.
2. 제 1 전시실
제 1전시실에는 1.200 여 점이 넘는 실제 문화제가 보존되어 있었다. 8만 년 전에 사람들이 돌을 쪼개거나 갈아서 쓰던 주먹도끼와 찍개도 있고 ,뼈로 만든 낚시 바늘, 민무늬 토기, 간 돌검 등 여러 문화제가 있었다. 또 옆에는 옥으로 만든 목걸이, 구멍항아리 ,새 모양 토기 ,수막새 ,청자대접 등 여러 가지 조상들의 지혜를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나주 서성문 안 석등]
박물관을 들어서자 바로 앞에 석등이 위치해 있었다. 석등은 네모난 바닥 돌 위에 연꽃이 장식된 아래 받침돌, 팔각의 중간 기둥 위로 향한 연꽃이 장식된 위 받침돌을 차례로 세운 뒤, 그 위에 불을 밝히는 불발기집을 놓고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지붕돌에 장식된 무늬는 꽃송이가 피어난 듯 아름답고, 바닥돌이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었다. 나주 서성문 안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구조가 짜임새가 있으며 조각도 우수했다
[뗀석기와 석기문화]
약 8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영상 강 일대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 했으며. 강과 하천을 따라 생활영역을 넓혀갔다. 이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갈돌석기로 불리는 찍개. 주먹찌르개. 주먹자르개. 여러면석기. 사냥돌 등의 몸돌석기와 긁개. 홈날석기. 톱니날석기. 뚜르개 등의 격지석기가 대표적이다
[ 고기잡이 기술]
전라남도의 해안은 많은 섬이 모여 있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천혜의 어장이다. 약 8000년 전부터 사람들은 강과 바다로 눈을 돌려 해산물 채취와 고기잡이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강을 중심으로 하는 어로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점차 넓은 바다로 나갔다. 돌이나 뼈 ,조개껍질을 이용하여 그물, 낚시 바늘, 찌르개, 작살 등을 만들어 고기를 잡았다. 영산강 하류와 남해안 지역의 조개무지에서는 물개, 돌고래의 ,뼈가 발견되고 있어 이시대의 다양한 식생활을 알 수 있다.
[ 고인돌과 껴묻거리 ]
지금까지 전남지역에서는 약 20,000여 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량과 밀집도를 보여준다. 고인돌을 만들 때에는 무덤방을 땅 밑이나 땅 위에 만들고, 그 위에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야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돌을 덮었다. 무덤방속에는 당시의 세력가들이 사용하였던 간 돌검. 돌화살촉 등의 석기와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검은간토기 등의 토기, 청동거울. 청동 검 등의 청동기, 곱은옥. 대롱옥 등의 꾸미개를 껴묻었다.
[ 마한의 형성]
한반도 남부지역에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이 지역의 여러 부족들은 철제 농 공구를 사용하여 농업 생산 역을 증대시켰다. 이를 발판으로 세력을 키우고, 부족 간의 통합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백제. 신라. 가야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마한. 진한. 변한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소국들이 통합되었다. 청동방울과 잔무늬거울 등 의례용 도구의 등장은 집단 내에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강력한 지도자가 출현하였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모양의 금동 관]
관은 머리를 보호하고 장식하거나 신분을 상징하는 꾸미개로, 우월한 지위와 신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금동관이 등장하는 시기는 삼국시대로 현재까지 모두 무덤에서만 출토 되고 있습니다. 금동관은 문화에 따라 형태가 서로 다른데 백제의 경우 고깔형의 모관이 기본적인 형태이지만 신라나 가야의 경우에는 둥근 테를 중심으로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을 잔 대관이 기본형태 입니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모관과 대관이 함께 세트를 이루고 출토되었는데, 모관 중심으로 구성된 백제의 관들과는 다른 독특한 지역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제 2 전시실
제 2 전시실에서는 고분의 발굴과 유물의 보존처리 하는 곳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아쉽게도 제 2 전시실은 보지 못했다
4. 나주 서성문 안 석등
박물관을 들어서자 바로 앞에 석등이 위치해 있었다. 석등은 네모난 바닥 돌 위에 연꽃이 장식된 아래 받침돌, 팔각의 중간 기둥 위로 향한 연꽃이 장식된 위 받침돌을 차례로 세운 뒤, 그 위에 불을 밝히는 불발기집을 놓고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지붕돌에 장식된 무늬는 꽃송이가 피어난 듯 아름답고, 바닥돌이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었다. 나주 서성문 안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구조가 짜임새가 있으며 조각도 우수했다
느낀 점
나주 국립 박물관에 가서 우리나라가 발전한 과정과 우리선조들의 지혜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유물을 보고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고, 설명이 잘 되어있다는 것 을 느꼈다. 우리가 간 날에 삼별초도 설명하고 있어서 삼별초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다시 알게 되어서 좋았다. 다시 한번 방문 한다면 제 2 전시실에 유물을 관리하는 것을 자세히 보고 다양한 활동을 체험해보고 싶다. 하지만 어린이체험이라 불가능 할 것 같다.
나주 박물관에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그때의 생활방식이 없어지지 않고 그 방식으로 기본으로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으며 지금과 옛날의 생활방식이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 을 알았다. 다시 한 번 슬기로운 옛 선조들의 생활을 느끼게 해준 곳 인 것 같다. 큰 박물관은 아니었지만 소소하게 잘 되어 있어서 친구들이 방문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옛 생활을 자세히 배우고 싶다면 나주 국립 박물관에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