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상 공병련 화백
[심사평] 공병련(孔炳蓮) 화백은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공병련 화백이 추구한 작품세계는 ‘광섬유를 매체로한 라이트 키네티즘’이었다. 빛의 세계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광섬유를 활용해 우주의 아름다운 별빛을 연출해, 조형예술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빛은 외부의 우주를 의미한다. 공병련 화백의 작품은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는 조형예술이고, 후기는 氣예술(그림)이다.
공병련 화백이 ‘빛’과 ‘광섬유’에 집착한 본질은 ‘선’(線)이다. 선분은 점의 연결이며, ‘나와 너’를 연결하는 중간 매개체이며, 점(點)의 고독을 사회적으로 연결한다. 우주의 아름다운 세계를 광섬유로 연출했던 초기 공병련 화백의 작품은 ‘사람과 사람의 어울어짐’을 상징한 것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함께
이후, 공병련 화백은 교육계에 몰입한다. 30년 넘게 아이들 교육사업을 전업(專業)으로 하면서, 조형예술에 대한 작품세계는 직업과 함께 연출되었다. ‘학생들의 생각과 재능과 꿈’ 그 자체를 작품으로 보고서 ‘인재양성의 작품’에 몰입했다. 교육사업은 사회적으로 상당히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병련 화백은 ‘교육과 예술’은 상호 독립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내면적 성찰(省察)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우주(宇宙) 즉, 마음속 우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공병련 화백의 초기작품이 외부의 우주에 집중했다면, 후기 작품세계는 내부의 우주에 몰입한다. 초기 작품은 조형예술로 표현되었고, 후기 작품은 평면예술인 그림으로 연출되었다.
예술계는 공병련 화백의 후기 작품세계를 ‘氣 ’라고 명명한다. 氣그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에너지를 받아서, 화가는 그 에너지의 손이 되어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작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작가의 의지를 비움으로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각각 다르다. 종교적 의미로 해석되면 기독교의 ‘성령화’와 불교의 ‘만다라’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작품세계는 “영감에 의해서”라고 표현된다.
氣는 쌀(米)과 입(口)의 합성이다. 밥을 먹는 모습이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나기 때문이다. 밥은 곧 몸의 에너지이며, 밥을 먹지 않으면 몸의 자동차는 움직이지 못한다. 이처럼 몸의 정신을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바로 ‘기’(氣)이다. 공기(空氣)는 텅빈 공간에 존재하는 기(氣)를 말한다. 빛(光)은 보이는 물질계이고, 기(氣)는 보이지 않는 파장의 존재체이다. 조선시대 이황과 이이(이율곡)은 보이지 않는 기(氣)의 존재를 놓고서 갑론을박(甲論乙駁) 다투기도 했다. 빛(光)이 물질이냐, 물질이 아니냐로 다투는 것과 비슷한 학문적 논쟁이었다. 빛과 기(氣)는 상호 연결되어 있다.
공병련(孔炳蓮) 화백은 ‘炳’(불빛 병)의 중간글자가 초기 작품세계로 연출되었고, ‘蓮’(연꽃 련)은 이을 련(連)과 꽃(花)의 합성으로, ‘연결짓는 사람의 관계형성’으로 작품세계의 철학인 ‘線’으로 연결된다.

공병련 화백이 교육사업으로 경영하는 경성유치원.
공병련 화백은 초기 조형예술로서 ‘빛의 우주세계’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을 연출했다면, 후기 작품세계로서 ‘기의 내면세계’를 통해서 나(我)와 내면의 나(我)를 서로 만나게 하는 철학적 예술론을 표현했다. 외부의 우주세계에서 내면의 우주세계로 급변화한 작품세계를 연출하기까지, 30년의 교육세계에 종사하면서 두뇌로 ‘예술가로서 장인정신’을 놓지 않은 결과의 힘도 있을 것이다.
이에 공병련 화백의 ‘초기 작품 빛의 예술세계’와 ‘후기 작품 기(氣) 작품 세계’를 함께 서울미술상에 선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