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유방과 항우의 사건을 음미하면, 인생사 빨간불과 파란불이 보이는 것 같다. 유방(劉邦)은 분명 항우에게 크게 밀렸다. 그런데, 그가 최후의 승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황판단을 분명히 했던 데 있지 않을까? 유방은 농사꾼 출신이어서 그런지, 겨울에는 쉬면서 씨를 준비하고, 봄에는 씨를 뿌려야함을 알았던 것 같다. 씨는 겨울에 뿌리면 안된다.
홍문연(鴻門宴)의 치욕은 마치 월왕의 ‘와신상담’처럼 처참한 사건이었다. 유방과 항우는 20살의 연세차이가 난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항우가 23세에 궐기했고, 홍문연은 3년후 정도이니 대략 25~26세였다. 25살 청년앞에서 45살 어른이 무릎을 꿇고서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했고, 게다가 유방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먼저 차지한 관중의 권한을 고스란히 항우에게 바치는 것이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은 기꺼이 내려놨다. 내려놓지 않으면 내려놓음을 당할 것을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나아감과 물러남을 미리 파악하고, 자신이 해야할 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그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지도자는 두뇌역할이므로 판단력이 정확하고 빨라야한다.
반면, 범증의 책사를 잃은 항우가 보여준 상황판단은 오로지 ‘나를 따르라’였다. 서초패왕의 권력으로 의제(義帝) 초회왕을 죽였으니 그로 인해서 제후들의 불만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유방에게 전쟁의 명분을 줬다. 그때 항우는 아주 긴 전쟁의 수렁텅이에 빠지게 되고, 전쟁의 승기는 잡았다고 해도 모든 제후국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수습할 길이 까마득했다. 나아감과 물러남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해서 결국 그는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멸망한다. 그의 나이 겨우 31세였다. 그때라도 물러남을 택해서 팽성으로 돌아가서 세력을 규합하고 10년후를 내다봤다면 중국의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월왕 구천이 원수를 갚았던 그 기간은 20년이었으니,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위력을 가진 항우도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멸망당한 영웅이 된 듯 하다. 영웅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빨간불과 파란불을 정확히 구분하고, 겨울과 봄을 명확히 판단하고, 지금 해야할 일인지, 조금 더 기다렸다가 해야할 일인지, 지금 추수해야할 때인지, 이런 모든 때를 구분해서 아는 것, 그것이 영웅의 기본덕목인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차의 성능을 ‘속도’로 구분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차는 속도보다 ‘통제’가 중요하다. 통제불가능한 자동차는 그 자체가 시한폭탄이다. 차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급브레이크가 고장났다면 그것은 죽음을 예고한다. 인생사, 그처럼 빠름보다 중요한 것은 느림의 가치에 있다. 사계절이 자연가운데 펼쳐지듯이, 인생사 모든 사건에는 빠름의 과정과 느림의 멈춤이 반복하면서 펼쳐지는 것 같다. 그것을 아는 자는 빨간 불에 건너지 않고, 파란불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앉을 자리 설 자리 구분해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는 지혜가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도서 3장 1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정말 맞는 말씀이다. 밥먹을 때 밥먹고, 잠잘 때 잠자고, TV볼 때 TV보고, 가야할 때 가고, 멈출 때 멈추고….. 인생사, 수많은 사건속에 그것을 분별하면서 해야할 것과 불필요한 일을 먼저 구분하고서 보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면 사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