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오늘 친한 친구가 날 찾아왔다. 야구선수 및 야구분야 교수로 활동하는 오래된 친구다. 톰앤톰스에서 함께 내년도 교육사업을 논의하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갑자기 날 쳐다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하는 것, 반드시 고쳐라. 친구니까 말해주지, 누가 말해주냐? 그리고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도 하고, 미백효과도 내고, 하얀 치아가 얼마나 좋으냐!!”
갑작스런 돌직구였다. 내 성격, 언론인으로서 내 성격으로는 즉각 반사신경이 발동했을 것인데, 나의 스타일이 중년으로 흩어졌음을 알려주는 친구의 충고는 내게 진실하였고, 나는 “그래, 친구야!! 그렇게 할께!! 고마워!! 너 말이 맞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는 갔다.
친구가 가자마자 나는 슈퍼에서 미백효과를 내는 치약을 사서 이빨 청소를 시작했고, 즉시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았다. 친구의 조언이지만, 성령님께서 그 친구를 통해서 내 스타일을 점검했다고 나는 믿는다. 순식간에 실천하였다. 아!!! 충고를 듣는 것은 충치를 뽑는 것처럼 기쁜 일이다. 뻔히 맞는 말인데, 친구의 말에 내가 반발하면서, 충언을 받아드리지 않았다면, 나는 썩은 정신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마치고, 몇가지 사건이 떠올랐고, 이치를 통해서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자극과 반응’으로 증명된다. 친구가 내게 나의 잘못을 지적했는데, 그것에 내가 반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발하면 나는 죽은 정신이다. 옳은 지적은 받아드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못한다. 나는 10년전 정말로 많이 지적하면서 살았지만, 요즘은 지적을 하지 않고, 비유로 돌려버린다. 지적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행되지 않음을 알기에 그렇다. 오히려, 나를 고치라고 하면 그것을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체형관리를 배우다보니, 사람들의 걸음과 자세만 보인다. 99%가 자세불량, 걸음불량이다. 왜 그렇게 걸을까? 나는 늘 그 생각이다. 내가 볼 때 분명 자세가 비틀어졌는데 그렇다고 내가 달려가서 “팔자걸음이네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돌직구를 던진 책임이 내게 날아올 것이다.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즉, 하나님을 변수로 두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간과하면, 훗날 낭패를 당하게 된다. 나는 지난 10년동안 늘 그것과 씨름하면서 살아왔다. 세상이 보기에, 주변이 보기에 내가 틀린 것 같아도, 하나님을 향해 내가 옳으면 그 길이 옳은 것이다. 반면, 세상이 보기에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틀리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 댓가는 반드시 치러야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행한대로 법칙이며, 정의다.
내가 오늘 정말로 궁금했던 질문이 있다. “왜 아플까?”이다. 몸이 뻐근하게 아파니, 건강하려고 운동한 것이 오히려 내 몸에 아픔을 주니, “왜 아플까?” 그 질문을 내게 했다. 친구에게도 물었다. 운동출신이니,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해서 물었다. 친구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내게 들려줬고, 교보문고에 가서 몇권의 책을 사서 ‘딱’ 펼쳤는데, 소제목에 “왜 아플까?”라는 제목이 있었다. 살 때는 못 봤는데, 소제목을 보고 깜짝 놀랬다. 그곳에 내가 찾던 답이 있었다. 이것이 자극과 반응이다. 생각했는데, 그 답이 있는 책을 내가 어찌 알고 샀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 성령과 함께 신비롭게 살았음을 감사하며,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