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인체는 참으로 신비하다. 푸른 구슬 ‘지구’(地球)에 73조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듯이, 인체의 건축물에도 73조개 이상의 세포들이 살아가고 있다. 지구에 오늘도 사람은 태어나고, 죽어간다. 그처럼 인체에서도 세포가 새롭게 태어나고, 죽어간다. 그렇게 사람은 오늘을 살아냈다.
정명석 목사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人間)은 3명의 존재가 합쳐져 있다. 보이는 육체, 생각의 혼체, 보이지 않는 영체이다. 혼체는 뇌(腦)와 연결된 실체로서, 꿈속에서 보여지는 자기자신이다. 혼체도 실체로서 존재한다. 영체는 죽음 이후에 영원히 존재할 ‘파장의 존재체’이다.
3명의 존재체가 서로 다르지만, 함께 연결되어서 살아간다. 이러한 이치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신비한 묶음이다. 뇌와 중추신경계와 근육기관이 서로 연결되어서 생명력을 유지하듯이, 영체와 혼체와 육체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영체와 혼체를 하나로 묶어서 ‘영혼’이라고 부른다. 결국,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다문화’이다.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영체와 생각의 혼체가 서로 화합하면서 더불어 살아간다. 전혀 다른 이질적 존재들이 사랑으로 일체된 세계가 곧 인간(人間)이다.
육체를 따져도, 인체는 다문화 건축물이다. 206개의 뼈들로 구성된 인체가 운동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신경과 근육의 독특한 구조물이 하나로 연결되어서다. 우선 206개 뼈들만 봐도,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뼈들은 그 모양이 정말로 다양하다. 손가락과 발가락처럼 짧은 뼈, 정강이와 갈비뼈처럼 긴 뼈, 두개골과 골반처럼 평평한 뼈, 척추처럼 매우 복잡한 뼈들로 되어있다. 이러한 뼈들이 근육과 인대가 없다면, 뼈무덤일 것이다. 무덤을 파보면, 실제로 뼈들만 채취된다. 그 뼈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생각을 발현하는 것은 근육과 신경이 하나로 연결되어서다. 강한 뼈와 부드러운 근육과 보이지 않는 실체의 신경이 서로 연결되어서 인체는 살아서 숨을 쉰다. 곧, 신경과 근육과 뼈가 하나로 어울어진 인체는 그 자체가 이미 다문화다.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갈 때, 그 현상속에는 인체의 무수한 기관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운동력이 존재한다. 공기가 기도(氣道)를 통해서 기관지로 들어오면, 폐포에서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물물교환이 발생하고, 적혈구가 땀을 뻘뻘 흘린다. 이때 횡격막이 밑으로 내려가고, 갈비뼈는 위로 올라가면서 흉강을 넓힌다. 모든 현상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순환 열차처럼 돌아가는 ‘폐정맥’은 심장의 좌심방에 들어가서, 좌심실로 내려가 대동맥으로 다시 떠난다. 이때 심장은 수축하고, 혈관은 엄청난 압력을 견디면서 모세혈관까지 산소를 이동시킨다. 우리가 ‘숨’을 쉬는 그 작은 현상에 인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해낸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활용해서 ATP를 생산해, 인체의 움직임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아!!!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로 연결된 인체의 신비함은 오묘한 그 자체다.
다문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人間)도 사람의 관계를 의미한다. 간(間 )은 ‘사이’로서 둘의 연결구조를 의미한다. 다문화(多文化)는 다양성의 문화로서, 서로 다른 문화가 함께 모여서 살아가는 것이다. 진리의 이상세계는 이사야서에 나오는데, 서로 다른 동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해서, 하나가 되어서 이상세계를 이룬다는 예언이다. 호랑이같은 성격, 토끼같은 성격, 코끼리같은 성격, 개미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사람답게 변화해서 서로 어울어져 살아간다는 의미다. 진리를 중심한 다문화 이상세계가 바로 이사야서 예언이다.
그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만 생각하면 안된다. 나를 돕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나를 반대한다고 무조건 싫어해서도 안된다. 혈당이 높으면 췌장의 랑게르한스 섬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어서 혈당이 낮아지고, 혈당이 낮아지면 같은 장소에서 글루카곤이 분비되어서 혈당을 높인다. 서로 다른 성격의 호르몬이 각각 존재해서 혈당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또한 다문화 협력구조이다. 이목구비(耳目口鼻)는 그 모양과 특성이 전혀 다르다. 눈과 귀와 입과 귀는 전혀 다른데, 이들이 각자 위치에서 각자 역할을 제대로 하니까, 얼굴의 아름다움을 발현한다. 이것도 다문화다. 인체뿐만 아니라 사회현상도 모두 다문화로 되어있다.
나와 다르지만, 생각의 각도를 조금 변경하고 마음의 넓이를 조금 넓혀서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을 것이 없다. 각박하게 비판하면 바늘끝이고, 사랑으로 포용하면 태평양이다. ‘나로부터’ 인식관을 바꾸는 것, 그것이 다문화의 출발인 것이다.
‘나와 다른 뭔가’를 만났다면, ‘나를 반대하는 그 무엇’과 충돌했다면, 좀 어떤가? 인체의 모든 근육조차 협력근과 길항근(반대근)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걷는 걸음도 마찰력이 있어서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반대의 마찰력이 없다면 얼음판이다. 얼음판에서는 도무지 걸을 수가 없다. 다리를 드는 그 순간, 정강이와 종아리 근육은 동시에 작동한다. 발등과 발바닥 근육도 동시에 작동한다. 서로 반대방향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그렇게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고, 그렇게 하루같은 인생이 끝날 것이다. 모두 다문화로서 하나님과 함께 어울어져 살아가는 인생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