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20년간 성전과 궁궐을 건축했다.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7년간 성전건축, 13년간 궁궐 건축이다. 성전건축 기간이 짧은 것은 다윗때부터 준비된 바탕이 있어서다. 다윗왕은 오르난 타작마당을 구입하고, 성전건축의 땅을 샀다. T종교와 J종교는 ‘성지에 성전건축’을 매우 중요한 교리로 삼고 있다. 십자가 사건을 ‘실패’로 보기 때문이다. 성전의 상징인 육체가 죽음으로 성전이 멸망당했으니, 재림의 역사에는 성전을 건축함으로 역사가 완성된다고 본다. 교리가 그렇다.
20년의 성전건축과 궁궐완공을 통해서, 바로의 딸이 황후로서 권력을 행사했다. ‘바로의 딸을 위한 집’은 교태전(交泰殿)을 말한다. 솔로몬의 궁궐은 경복궁이다. 궁궐 건축은 왕조 초기에 ‘왕권강화’를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다. 솔로몬은 왕권이 상당히 약했다. 압살롬의 반역, 아마사의 반역으로 다윗은 왕세자 책봉도 차일피일 미루었고, 왕자 아도니아가 스스로 ‘왕’이 된 후에, 어렵게 나단 선지자와 밧세바가 협력해서 다윗을 알현하고, 솔로몬이 왕으로 책봉되었다.
조선시대 이방원이 압살롬이면, 솔로몬은 방석과 같았다. 조선의 방석은 살해당했다면, 이스라엘의 방석인 솔로몬은 겨우 살아남았다. 솔로몬의 왕권은 왕조실록처럼 과장되게 기록된 것이 있다. 거품을 제거하고 볼 필요가 있다. 솔로몬은 20년의 건축사업을 실시하고도, 지속적으로 건축역사를 추진했다. 이때 백성의 부역이 의무가 되면서 경제파탄이 일어난 것이다. 솔로몬이 죽은 이후에,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무거운 멍에”로 표현한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왕이 좋다고 백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솔로몬이 궁녀 1천명을 거느렸으면,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노총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백성의 궁핍이 솔로몬과 무슨 상관이랴!!
재림의 역사를 교리로 채택한 이단들마다 열왕기상을 자세히 읽어보면, 솔로몬은 ‘헤롯왕’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예언하자,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했다. 그 기록이 아기예수를 죽이려던 헤롯왕과 흡사하다. (열왕기상 11:40) 이러한 기록을 말하는 이유는 성전건축이나 파괴가 재림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솔로몬은 궁궐을 짓고서 무엇을 했는가? 그것이 핵심이다. 성전과 궁궐을 짓고서 솔로몬은 ‘성전보다 궁궐’을 중심했다. 헤롯왕도 동일하다. 그가 아무리 예루살렘 중건사업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백성의 민심을 얻기 위함이지, 자신과 백성의 신앙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궁궐속에서 잔치하면서, 세례요한을 참수했다. 성전과 궁궐을 짓고서, 무엇을 하느냐가 핵심이다.
궁궐을 짓고, 1천궁녀를 둔 솔로몬은 점점점 타락의 길로 빠졌다. 1천 궁녀를 위해서 날마다 향락을 즐기고, 시바의 여왕이 와서 예물을 받고서 아름다운 밤을 보내면서 여생을 즐겼으나, 자녀교육을 제대로 못했고, 지방마다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 양성을 실시하지 못했다. 솔로몬이 아무리 지혜롭고, 총명해도, 그가 죽으면 지혜도 끝이다.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라면, 그가 죽은 후에 남겨질 후손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것을 고민했어야한다. 그런데, 후궁들과 즐기기 바빴다. 그래서, 후궁들이 원한는 것을 허락하면서, 우상숭배의 앞잡이가 되었다. 열왕기상은 그것을 분명히 기록한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르호보암은 원로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청년의 지혜를 따르면서, 과중한 납세의무를 ‘전갈의 채찍’으로 비유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여로보암으로 돌아섰다. 르호보암의 문제가 아니었다. 솔로몬의 문제였다. 솔로몬이 후궁들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면서, 원로들의 간언을 무시하니, 그 자식들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 솔로몬은 지도자 양성과 자녀교육에 실패했다.
성전건축을 완공하고,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했는가?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 10개 지파를 약속하면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했는가? 사무엘의 마지막 연설의 마지막 문장과 같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라고 했다. 성전을 짓고 궁궐을 완공하고서, 솔로몬은 우상숭배를 행했다. 성전과 궁궐은 큰 의미가 없다. 어찌 사느냐가 핵심이다. 여로보암도 동일하다. 약속을 받았으나,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숭배의 길을 갔다. 약속을 받는 것보다 약속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