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 열처녀 비유가 누가복음에서는 배경과 무대와 상황이 변경된다. 근본 뼈대는 흡사한데, 설정이 많이 다르다. 열처녀 비유를 놓고, 어떤 종교단체는 ‘재림의 비유’라고 풀이하지만, 과연 그럴까?
예수님때 이미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신랑과 신부’로서, ‘주인과 종’으로서 ‘친구와 벗’으로서, ‘왕과 신하’로서, ‘채권자와 채무자(갑과 을)’로서,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아버지와 아들’로서 다양하게 비유해서 설명했다. 신랑과 신부는 예수님과 믿는 성도의 공동체 관계이며, 계시록을 통해 이미 ‘어린양의 아내’로서 나와있다.
어떤 종교단체는 종급-아들급-신부급으로 종교의 발전을 풀이한다. 그렇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종교를 하나의 틀로 고정하면 나머지는 죽게 된다. 옳지 않다. 종급과 아들급과 신부급으로 보는 종교단체는 “주의 종”으로 낮추는 표현을 몹시 싫어하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처럼’ 섬겼다. 섬기는 주인, 복종하는 왕의 개념이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빚어졌다.
주인과 종은 섬김과 복종의 관계인데, 주인이 종을 섬긴다. 종은 주인에게 대접을 받는다. 이것이 예수님의 이상세계다.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진다. 왕과 신하도 반대개념이다. 명령을 내리는 자는 신하이며, 명령을 수행하는 자는 왕이다. 실제 예수님은 명령에 따라 십자가에서 죄수로 죽었다. 제자들과 유대인들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뱀은 “하나님이 되어라”고 한다. 예수님은 “종이 되어라”고 한다. 종이 되면, 주인이 된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의 권력이며, 십자가의 도(道)이다. 누가복음 12장 35~38절 혼인잔치 비유에도 나타난다.
마태복음 25장 혼인잔치는 열처녀가 등불을 준비하는데,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관건이며, 신랑이 신부들에게 오는 중이다. 누군가 큰 소리로 “신랑을 맞으라”고 소리친다. 누가복음은 혼인잔치는 맞는데,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 또한 혼인잔치가 이미 열렸고, 그곳에서 빠져나온 주인의 이야기다. 그 주인이 신랑일 수도 있고, 신랑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 누가복음은 혼인잔치 무대는 대저택이다.
12:36에서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했다. 마태복음 25장은 문밖에서 등불을 가지고 맞이하겠지만, 누가복음은 집주인이 문을 두드린다. 이것은 건너방에서 혹시 집주인이 올 수도 있음을 긴장하면서 기다리는 종의 모습이다. 혼인잔치가 열리면, 모든 종들은 밤을 지새야한다.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를 하면, 매니져는 무대뒤에서 초긴장한다. 집주인의 혼인잔치가 열리고 있는데, 그집 종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면, 그 종은 쫓겨날 것이다. 이런 의미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성도의 긴장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철야기도의 자세를 비유한 것일까?
12:35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했다. 이 구절은 12:42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와 연결된다.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은 주인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주인에게 발견되면, 주인이 그 종을 주인으로 섬길 것이다. 12:37에서 “주인이 띠를 띠고 그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고 했다. 허리에 띠를 띠고서 등불을 켜고 있으면, 주인이 띠를 띠고서 그 종들을 수종들게 된다. 누군가 “주의 종”으로 스스로 낮추면, 주님께서 그날에 그를 높일 것이다. 반면,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으로 높이면, 뱀의 머리가 깨지듯 추락할 것이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있으라”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는 사람과 같이 되라”는 계시록 3:3과 3:20과 연결된다. 계시록 3:3에서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했고, 계시록 3:20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다.
주님은 마음 문을 두드린다. 내 마음의 집은 누가 주인인가? 인생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주인처럼 섬기는 종과 같다. 깨어서 주님의 성령을 간구하고 기다리면, 도둑처럼 성령의 문을 두드린다. 그때 종이 주인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 듯 영접해야한다. 주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누가복음 12장 혼인잔치 비유는 자신의 주인은 주님이고, 자신은 종처럼 주님을 맞이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다. 돈이 자기에게 있어도, 자신은 주님의 지갑일 뿐, 주님이 돈의 주인이다. 집도 마찬가지며, 명예도 동일하다. 우리에게 명예가 주어지면, 그것은 머리되신 주님께 드려야한다.)
***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챕터 29장 (섬기는 주인 비유)를 읽고서.
*** 인자의 권력은 섬기는 신하가 왕이 되고, 명령하는 왕이 신하가 된다. 스스로 높아지면 낮아지고, 낮아지면 높아진다. 신부의 위치로 높아지면, 결국 몸종이 될 것이다. 스스로 몸종으로 낮아지면, 높아질 것이다. 성령을 빙자하는 모든 사명자들은 그 실체가 ‘몸종’임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