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제자들은 가지로 비유한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거당하고, 열매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고 그것을 깨끗하게 해주신다. 이 말씀만 읽으면, “열매맺기”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곧 율법적 신앙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 열매는 누가 맺는가? 예수님이다. 가지에는 열매가 맺히는 것이지, 열매를 맺는 근본자는 포도나무다. 돈이 지갑속에 있으면, 지갑이 돈의 주인인가? 사람이 돈의 지갑인가? 지갑은 가지이고, 사람은 포도나무다. 열린다 성경(절기 이야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 요한복음 15장을 설명한 대목이다. 번역의 중요성을 진실로 깨닫는다. p116에 나온다.
[열린다 성경-절기 이야기 p116]
왜 영어성경과 우리말 성경은 이 부분에서 오역을 한 것일까? 이는 ‘제거해 버린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 속에 그 해답이 있다. 헬라어 ‘아이로’는 ‘제거해 버리다’(take away)와 ‘들어주다’(life up)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우리말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snow)과 사람 얼굴에 있는 눈(eye)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요한복음 15장을 깊게 읽어보면, 핵심은 ‘붙음’이지, ‘열매’가 아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붙음’의 결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은 “내게 거하라”고 하시면서, “내 사랑에 거하라”고 하시면서, “내 말에 거하라”고 하시면서, ‘붙음’을 강조하신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도 “내게 붙어 있어”로 시작한다. 붙어있는 가지인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제거하실까? 열매를 맺지 못한 가룟 유다가 제거당한 것일까?
과연 그렇다면, 나머지 11제자가 열매를 맺었던가? 그 열매는 서로 사랑하는 것인데, 제자들은 세족식에서 보듯이, 십자가 사건에서 보듯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제거당한 가지가 되지 않았다. 붙어있는 가지는 절대로 제거당하지 않는다. 붙어있으면, 열매를 맺게 된다. 열매 맺는 주체는 포도나무여서 그렇다.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밖에 버려지는 것이지,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제거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장 1절에 분명 2종류의 가지가 나온다. 열매를 맺는 가지와 열매를 맺지 않은 가지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고’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지 않은 가지는 ‘열매를 맺게 하려고’의 숨은 뜻이 들어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열매는 무엇인가? 포도나무의 뜻이고, 그 생각이다.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듯, 우리에게서 주님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가지는 3종류다. 열매를 맺는 가지, 열매를 맺지 않은 가지, 붙어있지 않은 가지다.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버려지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전지작업’을 당한다. 여기서 전지작업은 가지절단이 아니고, ‘잔가지 절단’이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 포도나무는 ‘큰 돌’을 밑에 괴어서 들어 올려서 ‘손질’을 해준다. 세족식은 예수님이 낮아짐으로 제자들을 높인 것이다. 십자가는 곧 예수님이 낮아짐으로 제자들을 높이신 ‘휴거’(携擧_들어올림)에 해당된다. 혹여, 가지가 거지같아도, 붙어만 있으면 성령의 열매가 열릴 것이다. 거지 나사로처럼, 나는 주님께 붙어있는가?
주님께 붙어 있으면, 주님은 잔가지를 치면서 손질하시고, 세상과 떨어지도록 들어 올려서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우리가 맺을 열매는 무엇일까? 그것도 포도나무인 예수님이 결정하실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께 붙고, 주님 말씀에 붙고, 주님 사랑에 붙는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한 것보다 붙어있지 못함을 먼저 신경써야한다. 요한복음 15장의 핵심은 그것이다.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은데, 교회가 부흥하는 이단들은 부러워할 것이 못된다. 그것은 열매맺음이 아니고, 스스로 맺은 열매이므로,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예수님께 붙어야만, 예수님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