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을 향해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 “소금과 빛이다”라고 선언하셨다. “되어라”와 “이다”는 완전히 다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소금과 빛”으로 삼으셨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4)
빛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을 ‘소금과 빛’으로 만드셨다. 예수님이 보기에 제자 공동체는 이미 ‘소금과 빛’이다. 그들의 역할, 우리의 역할은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이다. 이때, 기억할 것이 있다. 주인은 주님이라는 사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 소금이 되려고 하고, 스스로 빛이 되려고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빛’이 좋으셨고, 예수님이 보시기에 제자들은 ‘소금과 빛’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수많은 나귀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오직 1마리 나귀를 지목했다. 베다니 마을 맞은편에 묶여있는 나귀새끼였다.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어오라” (눅19:30)
요리사가 요리를 할 때, 소금을 뿌려서 음식의 맛을 조절한다. 소금이 맛이 가서, ‘짠 맛’을 잃으면, 그 소금은 버림받는다. 그런데,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고서, “소금음식”이라고 하지 않고, “김치찌개”라고 한다. 소금은 속에 스며있다. 하나님은 요리사이며, 세상은 보여지는 음식이고, ‘교회’는 소금이다. 그렇다면, 주님이 보시기에 ‘빛과 소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주님께서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령, 세상은 권력의 해, 지식의 달, 돈의 별들이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과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속에 묻혀버린다. 주님은 권력과 지식과 돈과 명예를 ‘어둠’으로 규정하고, ‘말씀’으로 살아갔다. 말씀을 삶의 빛으로 삼고, 인생을 살아갔다. 하나님을 해처럼, 성령을 달처럼, 찬양을 별처럼 삼고서 살아갔다. 빛과 소금은 하나님과 일체된 삶을 뜻한다.
그 시대 유대교는 예수님을 철저히 버리고 짓밟혔다. 그들은 예수님이 필요없었다. 그들은 민족을 위한 권력이 필요했고, 민심이 필요했고, 돈이 중요했고, 칼이 필요했다. 원수사랑의 나약한 말씀을 외치는 예수님이 불필요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위해서 ‘희생양’의 소금과 빛으로 삼으셨다. 세상은 어둠에 갇혀서 빛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빛의 아들들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 소금과 빛으로 기도하고, 눈물로 살아갈 뿐이다. 소금과 빛은 세상이 알지 못한다. 왜냐면, 요리사는 하나님이며, 예수님이라서 그렇다. 음식이 어찌 ‘소금맛’을 알겠는가. 요리사가 소금을 음식에 넣는 그 신비를 깨달아야한다.
나는, 그대는, 누구의 소금이며, 누구의 빛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