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장 1절에 “모세가 죽고”라고 나온다.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모세가 죽었다. 그 모세는 어디로 갔을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디에 들어갔을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2세는 가나안에 들어가 전쟁을 했고, 모세는 죽고서 참된 안식을 얻는 ‘하늘 가나안’에 들어갔다. 하늘에 있는 참된 도성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다. 모세는 그곳에 들어갔다. 그 증거는 헤르몬산에 나타난 모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엘리야와 모세가 함께 나타났는데,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에 있는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다.
“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를 연구할 수도 있지만, 모세가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인생이 땅의 가나안은 차지하지 못해도, 하늘에 있는 가나안에는 들어가야한다. 땅의 가나안과 하늘의 가나안을 비교하면, 광야와 가나안의 차이와 같다. 임시적으로 머무는 공간과 정착할 땅이 다르듯이,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고향은 ‘하늘에 있는 가나안’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하늘의 본향’을 소망하는 ‘꿈의 지도’를 선물하셨다. 그것이 곧 ‘구원의 씨앗’이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는 사흘후에 요단강을 건넜다. 그와 같이, 모세의 율법시대가 끝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이후에,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해서 3년동안 공생애를 펼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3일만에 부활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그 3일, 죽음의 요단강을 건넌 것이다. 부활은 곧 ‘영원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따라가면, ‘죽음의 문’을 열고, ‘생명의 도성’에 들어간다. 구원의 앞면은 ‘죽음의 십자가’ 뒷면은 ‘구원의 생명나무’다. 죽음과 생명은 일체다.
십자가의 구원을 부정하는 곳이 있다. 십자가의 죽음을 부정하면, 피흘림을 믿지 않아서, 죄사함도 없고, 거룩한 부활도 없다. 제사를 지낼 동물의 피를 묻혀야 죄사함이 있듯이, 자신의 죄에 예수의 피를 묻혀야 죄가 사해진다. 믿지 않는 자는 죄가 그대로 있고, 믿었다가 믿지 않는 자도 죄가 다시 부활한다. 여호수아는 땅의 가나안에 들어갔고, 모세와 예수님은 영원한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