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은 크게 2가지다. 루터의 방법, 유대교의 방법이다. 유대교의 방법은 미드라쉬다. 성경의 원문에 생기를 불어넣듯이,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의미를 살리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해석은 생동감이 넘친다. 반면, 성경원문을 벗어날 위험이 많다. 천주교는 유대교의 성경해석을 그대로 상속했고, 예수님과 초대교회도 유대교의 성경해석법을 따랐다. 그렇게 1600년이 흐르면서 교황을 중심한 성경해석이 성경원문보다 권위가 높아졌고, 루터를 통해서 “오직 성경으로”라는 외침이 생겼다. 여기서 “오직 성경으로”는 성경만 보자는 것이 아니다. 성경해석을 할 때, “성경원문”을 중심해서 해석하자는 것이다. 천주교는 성경원문보다 전통적인 교황의 해석을 더 높게 평가했다. 마치 성문 토라보다 구전 토라의 뜻이 더 높은 것처럼 그러했다. 대부분 이단들은 유대인들의 성경해석법을 따른다. 통일교가 특히 그렇다. 재림부활이나 엘리야와 세례요한의 관계사명, 하와가 뱀(천사)와 성적타락을 했다는 것이나, 십자가 사건이 뜻이 아니어서 구원사역에 실패했다는 것이 성경의 원문을 짜깁기해서 새로운 성경해석을 발굴한 것이다. 이것을 유대인식 성경해석법이라고 한다. 나는 루터의 성경해석법을 중심해서 유대인의 성경해석법을 따른다. 성경원문의 뜻을 벗어나서 성경해석을 하게 되면, 구원이 상실될 위험이 높다. 왜 통일교는 영혼의 결혼식을 하고, 왜 신00은 순교자들의 영혼과 접신까지 할까? 이런 모든 것은 ‘성령’을 빙자한 주술적 신앙이다. 성령은 진리를 통해서 각 사람의 영혼가운데 내재하며, 혼탁하지 않다. 성령을 받으면, 성경을 깊게 묵상한다. 또한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매일생한불매향이다.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의 사명이 드러날까봐 매우 조심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구원주로서 십자가에서 피흘림을 받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했다. 태초에서 종말까지 인류의 죄를 대속해서 ‘피흘림의 화목제물’이 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 죽음으로 지옥까지 떨어져,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가 지옥에 갔다가 살아났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살았을 때 영생을 상속받는다. 죄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의는 무엇인가? 하나님과 관계가 이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관계가 연결된다. 하나님과 관계가 연결된 것인지, 아닌지, 그것은 각자가 알 수 있다. 성령은 곧 예수님의 영혼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모든 성도의 심령가운데 함께 임하신다. 이러한 내용은 요한복음에 나온 이야기다. 요한복음에서는 특히 “예수님과 성령의 관계”를 매우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진리의 성령은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하고 있다.
** 법을 해석한 것이 판례다. 법을 해석하는 것은 자유롭지만, 그 해석의 범주가 법률안에 있어야 효력이 발휘된다. 법률해석은 법률의 근거를 통해서 파생된다. 그처럼 성경해석은 성경원문을 통해서 해석해야 성경적 효력이 생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과 구원을 창조했다. 말씀을 벗어나는 것은 비진리다. 이런 이유로 마드라쉬 방법은 유익하면서도 위험하다. 마드라쉬로 성경을 해석할 수는 있으나, 해석된 내용이 과연 성경원문과 연결되는지 다시 확인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세기 3장처럼 뱀의 해석이 될 수도 있다. 뱀의 해석은 아담보다 더 지혜롭게 보였으나, 그 해석을 따른 하와와 아담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