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인생은 누구나 살면서 ‘어떤 무덤’에 갇힌다. 갇혔을 때,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 열어주신다. 부활의 주님은 믿는 자에게 ‘부활’을 주신다. 현재적 부활이다. 마태복음 28장에서도 주님이 갇힌 무덤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고, 그때 무덤의 돌이 굴려졌다. 그것은 주님이 나오기 위해서 돌이 굴려진 것이 아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경비병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신호’다. 부활의 주님은 닫힌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초월적 육체’를 덧입으셨다. 돌무덤을 굴리지 않아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돌무덤이 굴려지지 않는다면, 그 속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경비병들이 알 수 있도록 문이 열려져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활을 알 수가 없으니, 제자들이 알 수 있도록 무덤이 열려지고, 시체가 없어진 것을 분명히 알게 하셨다. 시체는 확실히 부활했다. 그래서 주님의 육체는 죽지 않고, 부활한 것이다. 다시 살아났으니, 주님의 육체는 잠시 주무신 것이다. 주님께서 주무신 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죽음의 형태’로 보여진 것이다. 고래는 사람과 다르게 아주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고 물속에 잠수한다. 그렇게 주님은 3일동안 무덤에 계셨고, 3일후에 성령의 생기가 다시 들어가면서 육체가 살아났다.
부활소식을 처음 접한 존재는 막달라 마리아다. 그리고 경비병이다. 천사가 돌을 굴린 것을 본 사람은 마리아와 경비병이다. 경비병도 분명 봤다. 부활을 봐도, 그 반응이 둘로 갈린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경비병은 돈을 받고서 ‘거짓말’의 대변인이 되었다.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다”고 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인데, 이단들이 가르친대로 거짓말로 하면 안된다. 이단들은 군인들에게 거짓으로 가르친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인본적 교리’에 불과하다. 주님은 실제로 부활했다. 유대인들이 거짓으로 만든 교리가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했다’는 것이고, 육체가 사라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은 육체로 살아나 영체가 되셨다. 이것이 성경적 증언이다.
육체가 살아나지 않고, 영체만 살아났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제삿날’로 기념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무덤도 없고, 제삿날도 없다. 오직 부활의 영광만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과 부활의 창조주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고, 경비병들은 부활의 현장에 있었으면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것을 전한 다음, 유대교 지도자들이 가르친 대로 거짓 복음을 전했다. 양심을 배신하면 안된다.
무덤에 갔다가 부활의 현장을 목도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큰 기쁨과 두려움’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려갔다. 그때 예수님을 만났다. 부활의 기쁨이 이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영광’에 참예했다.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이 거기에 있었다. 과거의 막달라 마리아는 죽고, 새로운 막달라 마리아가 된 것이다. 육체로서 새로운 육체를 덧입었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연합이 곧 부활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지, 다른 사람들의 말대로 살면 안된다. 천사의 증언처럼, 그는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 그래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부활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갇혀있는 모든 무덤과 감옥에서 해방되려면, 예수님을 찾아야한다. 예수님은 죽음의 감옥까지 열고 나오셨다. 그 어떤 무덤도 주님을 막을 수 없다.
베드로도 무덤속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막달라 마리아도 무덤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모든 인류의 남자와 여자를 대표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제자들의 증언을 믿는 자마다 무덤속에 들어간 베드로와 마리아가 되어서 주님의 부활에 참예함으로 무덤을 나올 수 있다. 이것이 부활의 출애굽이다. 무덤이 굴려진 것은 홍해의 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