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는 재밌고, 어떤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갈등요소때문이다. 뻔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소금이 없는 음식은 맛없다. 갈등은 소금이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며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 누구도 관심이 없다. 둘의 문제다. 그때, 남자가 여자 뺨을 때렸다. 이게 갈등이다. 뺨을 맞은 여자가 구조요청을 하려고 도망간다. 남자는 여자 머리채를 붙잡았다. 경찰이 그것을 발견하고, 수갑을 채운다. 여자를! 여자를! 이게 갈등이다. 왜 여자의 손에 수갑을 채웠을까? 남자는 누구지? (성경의 행간에 바람이 불게 하라! 문장들이 살아날 것이다.)
갈등은 모든 사람의 본성이며, 원형이다. 모성애도 원형이다. 원형을 건들면, 모든 사람은 동일하게 반응한다.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모성애는 동일한 감정이다. 그처럼 갈등도 공통분모다. 이야기는 이런 원형을 찾는 작업이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움을 주고, 그들의 갈등은 독자와 관객에게 동질감을 준다. 낯선 타인속에서 발견하는 익숙한 자신의 얼굴!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와 전혀 다른 타인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의사소통에 대해, 사람들은 오해한다. 잘못된 편견은 ‘말잘함’이다. 말을 잘해야, 의사소통 기술이 좋아진다는 화법교육이 불통시대를 열었다. 의사소통은 입과 귀의 문제다. 입만 강조하면, 입과 입의 전쟁이다. 말을 하는 목적은 상대의 귀가 듣기 위함이다. 그래서, 입보다 귀가 중요하다. 귀는 곧 경청이다. “나는 말할테니, 너는 들어!”라고 말하는 자부터 들어야한다. 들을 줄 모르면,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듣는 법을 모르기때문에 말할 줄도 모른다. 듣는 법을 아는 사람이 상대가 잘 듣도록 말한다. 말함과 들음은 동격이다. 이것이 경청화법이다.
나는 말한다. 그때,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내 말이 상대의 고막을 통해서 심장까지 들어갔는지, 그것을 살핀다. 경청화법을 아는 사람은 듣고, 그리고 말한다. 경청화법이 안된 사람은 듣자마자 반응한다. 이때 반응은 “형식적 반응”이다. ‘당구공처럼 튕겨친 반응’이라고 한다. 공감하는 대화는 당구공의 충돌이 아니고, 서로의 찰흙을 함께 섞는 일이다. 말을 듣는다는 것은 진실로 그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 주제로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A가 대화를 꺼내면, 그 대화는 ‘레고쌓기’와 같다. A가 놓으면, 그때 B가 놓는다. 그렇게 쌓아가는 것이다. 공감하는 대화를 나누면, 둘은 언어로서 교감한다. 언어는 마음을 이어주는 접착제다. 글보다 말이 접착력이 강하다. 반면, 말을 해도 서로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대화를 나눈 이후에 그 사람과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화법은 언어게임이며, 대화는 기술이다.
참고도서 8권 : 삶과 화법,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소통의 화용론, 스토리텔링의 기술, 일기쓰기 어떻게 할까, 방송대본 작성하는 법, 시나리오 쓰는 법, 소설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