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와 함께 걷다.
(알베르트 자코메티 展 감상문)
문화리더 : 유현지
문화리더 학교 : 서운중학교
취재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나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 불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들을 전시해놓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엄청난 고가에 낙찰된 미술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였고, 미술 교과서 및 스위스의 화폐에도 실렸다고 하기에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자코메티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죽음에 대한 경험과 큰 충격과 함께 인간존재에 대한 깨달음
을 조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이 항상 주변에 있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라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명이 붙어 있을 때의 인간과 생명이 사그라진 인간의 차이가 마치 사람과 사물의 차이와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가장 치열하게 파고 든 조각가였는데,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부서질 것만 같은 약한 모습을 읽어냈다. 이것은 작은 머리와 큰 발에 뼈대만 드러나게 가늘고 길게 표현되어있는 그의 조각상에 투영되어있다.
내가 전시를 관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자코메티 조각상의 스타일, 즉 방금 말한 것처럼 위 아래로 길게 늘려놓은 듯한 사람의 형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는 원래 매우 작은 조각을 만들었는데,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이 그에게 조각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고 떠났다. 이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한 자코메티는 고민하다가 사람을 길쭉하게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코메티와 인연을 맺은 예술가로 파블로 피카소를 들 수 있는데, 피카소는 자코메티에 대해 끊임없이 독설을 날리면서도 끝까지 가장 의지하고 인정했던 예술가가 자코메티였다고 한다. 이를 보면 피카소가 아마도 자코메티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시기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자코메티는 몇몇 사람들을 모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초기에는 동생인 디에고와 그의 아내를, 그리고 예순의 나이에 사랑하게 된 캐롤린이라는 여인에 이르기까지 그가 아끼고 사랑하고 주변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모티브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청동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절제된 모습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놀랍게 보였다.
자코메티는 그가 만났던 동양의 철학자의 영향 때문인지 ‘걷어내는 작품’을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나는 그의 이런 가치관이 매우 참신하게 느껴졌다. 보통의 경우 완성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뭔가를 계속 더해가며 조각하기 때문에 완성된 모습에서 이것저것 삭제하며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신기했다. 자코메티는 사람의 생명의 핵심은 다름 아닌 ‘시선’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부러질 것 같이 가녀린 몸을 가진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의 눈에는 단지 죽어있다는 느낌을 주는 다른 조각들과 다르게 어딘가 응시하고 있는 느낌, 진짜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담겨있다.
내가 이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작품은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이었다. 어둡고 커다란 방 안에 커다란 조각상 한 개 만이 존재하는데도 그 공간이 꽉 채워져있는 느낌이었다. 자코메티가 했던 말, “큰 공간에 나의 단 하나의 조각만이 있다. 하지만 그 조각은 그 큰 공간을 존재로 가득 채운다.”에 공감이 되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어른이 되어서 이 조각을 한 번 더 본다면 아마 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조각에 압도된다는 것을 느꼈다.
전시가 끝나고 난 전시장 바깥에는 자코메티 전시의 여운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참여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관람객들이 직접 자코메티의 조각을 그려보고 자신이 남기고 싶은 말을 적어보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상을 살짝 엿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뛰어난 예술적 소질을 가지고 있었던 자코메티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