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리더: 윤혜성
기록리더 학교: 대일외국어고등학교
취재 장소: 성동구청 (행사장소)
취재 제목: ‘우리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군의 성노예였습니다’
1. 취재동기
평소에 영화를 즐겨보는 나는 어느 날 귀향이라는 영화가 개봉하고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위안부 문제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평소에 역사에 큰 관심을 가졌던 나였기에 더 깊게 와 닿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에도 소녀상이 생기게 되었다. 실제로 그 소녀상을 수시로 방문하며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인의 권유로 위안부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어 나는 위안부 관련 행사 참여 권유를 받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의미 있는 활동에 바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행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배경으로 한 ‘소녀들의 기억’이라는 영화 시청과 실제 위안부 할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뜻깊은 행사였다.
2. 취재내용 :
1)일본군 ‘위안부’란?
동안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또는 인신매매범,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 받은 여성을 말한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후부터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과 을 포함한다. 그 밖에 과 , 과 , 등 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에게 징발되었다.
2)‘일본군위안부’, 그 단어의 의미
위안부 문제를 먼저 논의하기 전에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가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 초반에는 ‘정신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는 일본 국가를 위해 솔선하여 몸을 바치는 부대 라는 뜻으로 일제가 노동력 동원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일본에서는 ’종군위안부’ 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종군 이라는 용어에서 자발적으로 군을 따랐다는 의미가 내제되어 있으므로 일본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역사적 책임을 은폐 시킨다는 점에서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처음 논의하였을 때 위안부라는 단어를 직역하여 comfort women이라고 사용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성노예(military sex slavery)와 군대 성노예 제도라고 주로 사용하고 규정했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가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매춘의 성격이나, 국가를 위한 국민의 자발적인 희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발적 희생도, 개인적인 사적인 것이 아닌 집단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것이고 피해 여성들은 노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위안부 라는 단어는 지극히 가해자 중심의 용어이고 폭력성과 강제성을 감추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 사실은 일본군 위안부의 동기와 폭력성 그리고 모집과정 등을 고려한다면 일본군 ‘성노예’라는 명칭이 적합하다.
하지만 현재 위안부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대중화 되어있다. 위안부 라는 용어가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기에 적합 하진 않지만 이 용어가 당시 제도화했던 당대의 특수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성노예로 부르는데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되고 있다.
2)영화 귀향’과 전시회 ‘소녀들의 기억’
“여기가 지옥이다 야”
귀향은 위안부 소녀들에 관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1943년에 천진난만하고 어느 소녀와 다를 꺼 없었던 평범한 14살 정민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가면서 가족과 이별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맞이한 것은 일본군만 가득한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현장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매를 맞는 소녀들, 원하지 않는 성행위를 강요 받고 성병으로 고통받는 소녀들을 무참하게 총으로 쏴 버렸다. 너무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들이 실제 상황, 아니 어쩌면 실제는 더 무섭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면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살아있는 할머니들이 본인만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도 나온다. 왜 잘못한 것은 일본군인데 왜 할머니들이 미안해하고 아파해야 하는지 너무 의문스러웠다. 잘못은 일본군과 지금 현 정부가 하고 있는데 고통은 피해자들이 겪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다 보고 나서도 가슴이 계속 아프고 먹먹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머리를 세게 친 것처럼 멍하고 그냥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리뷰를 쓰기 위해 봤던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서도 눈물을 안 흘릴 수 없었다. 그들의 아픔이 다 전해지진 못하겠지만 이영화를 통해서 일부분이라도 우리에게 전달 된 것 같았다.
3. 느낀 점 :
이번 위안부 행사 ‘소녀들의 기억’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옥선 할머니의 실제 증언과 그때의 잔혹하고 슬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기력이 없는 기색이 역력하셨다. 할머니는 본인이 일본군에게 끌려갔던 이야기를 슬픈 눈을 하신 채로 설명하셨다. 거기 있던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은 엄숙해지고 진지하게 이 이야기를 경청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할머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는 위안부가 되기를 허락 한 적이 없는데 왜 우리가 위안부냐, 우리는 위안부가 아니라” 라는 말이 마음이 가장 찡했다. 맞다 지금 위안부 할머니들 그 누구도 위안부가 되기를 자처하지 않았다. 위안부의 뜻 자체가 자의성이 띈다. 위안부라고 불린다고 특히 외국에서 오해의 소지가 없었으면 좋겠다. 현재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속 별세 하시고 있지만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는 듯이 계속 침묵을 유지 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에서 합의 대신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위안부 문제에 끊임 없이 관심을 갖고 할머님들과 끝까지 함께 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