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백년대계”란 말이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미래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교육의 본질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은 28년간 교사로서의 필자 자신을 반성하고자 한다. 몇 일전에 오래된 제자를 만났다. 진로교사가 되고 난 후에는 만나는 제자들 이야기마다 흥미롭다. 그런데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죽어라 공부하고 이젠 성공의 결실을 맛보아야할 시점에 병을 얻었다고 하는 한 제자가 있었다. 자식같이 사랑했던 애제자의 슬픈 이야기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제자의 말이 “명문대 인기학과, 국가공인 자격시험(CPA) 합격, 국내 최고의 회계법인 취직…. 이제 남들이 부러워할 위치에 있지만, 예상치 못했던 현실 앞에 지금껏 살아온 인생전체를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떠했을까?”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과거에 가르쳤던 영어 과목을 특별히 좋아했던 제자였다. 열심히 공부했고 매우 높은 학력고사 점수를 취득했다. 당연히 명문대 인기학과인 경영학과를 진학하게 되었고, 경영학과 졸업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비록 세 번의 고배를 마신 후 어렵사리 합격을 했지만, 고생을 했던 이유가 주로 수학 때문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소질과 적성을 고려한 진로지도란 말은 전무했고, 학과에 대한 정보가 태반 부족했던 시절이다. 경영학의 대부분을 수학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 채, 점수와 주변의 평판에 따라 교과서적인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의 강점지능에 따라 좋아했던 외국어 관련 학과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상태이다. 회계사 공부를 할 때도, 힘들면 영어를 공부하면서 많은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 두고, 좋아하는 영어를 더 공부하겠다고 했다. 오히려 필자에게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나의 진정한 진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던 중,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부터라도 하세요.”라는 제자의 말이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이토록 진로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진로지도를 할 때 학생들의 흥미, 소질과 적성을 잘 발견하고 학생에게 맞는 맞춤형 진로지도를 해 주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이런 진로지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오늘만 살고 말 것처럼 현재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흥청망청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교육에서 조차 현재의 성과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입시결과의 실적위주 교육, 점수위주의 학교 경쟁 속에서는 진로란 용어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지난 MB정부가 야심차게 진로교사 배치로 진로교육의 물꼬를 텄지만, 사회적인 인식부재로 이 정책이 잘 뿌리를 내릴지에 대해 의문이다. 지금, 국회에 정부의 입법발의 중인 “진로교육법”이 안건 상정도 안 되고 계류 중이니 말이다. 전국에 약 5,000여명의 진로교사가 1교 1인 배치는 되어있지만, 법적 근거가 매우 미미하다. 그래서 그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 진로교육법이다.
바라 건데, “국민행복시대”를 말하고 있는 새 정부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본질을 잘 깨달았으면 한다. 소질과 적성을 잘 파악하고 나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여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을 때, 행복한 삶의 영위가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 정부에서는 진로교육을 강화하는 교육정책을 펼쳤지만, 새 정부에서는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 매우 불안하다. 대한민국 국회에 바란다. “교육의 백년대계”라는 말의 실천을 위해 진로교육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주기 바란다. 다시 말해,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변함없이 진로교육을 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 내에 진로상담을 할 공간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최근 진로교사들 중 과도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명예퇴직을 하는 숫자가 늘고 있어 걱정이다. 진로교육은 단순히 일개 교과에 속하는 개념이 아니다. 교육과정, 아니 교육의 패러다임을 넘어서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담아내야하는 거대 담론이다. 그러므로 선진국과 같은 진로교육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국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회에서의 법적마련, 정부의 행․재정적 지원, 미래의 인재양성을 위한 기업의 관심, 교육행정관료 및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의 인식전환 등의 국민적 관심이 어울러졌을 때 국민행복을 이룰 수 있는 진로의 터전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학교폭력이다 자살이다 외형적 파장이 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여 왔지만, 진정 그러한 문제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 필자가 본 원인은 진로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목표가 없는 학생,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성적경쟁, 뭔가를 시작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모르는 학생들…. 이와 같은 자신감 상실에서 학교폭력과 자살은 비롯된다고 본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진로교육이다.
그런 차원에서, 경기도교육청 내에 진로진학전담부서 설치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는 대한민국 혁신교육의 수장으로서 김상곤 교육감의 비전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진로진학 전담팀이 “행복한 교육공화국” 실현에 기여하는 부서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경기도에는 진로교육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이 표류하다가 만시지탄으로 이제야 부서를 만들게 되었다. 다만, 진학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진로에 토대를 둔 진학” 전담 팀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처럼, 진학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입시경쟁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렇다면, 도교육청의 진로전담부서는 대학입시학원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며 그 경쟁 속에서 학생들은 다시 비극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진로상담 초고칼럼 2013년 3월 8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