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더 : 윤여원
문화리더 학교 : 장자중학교 2학년
취재 날짜 : 2018. 10. 30(화) ~ 11.02(금) 3박4일간
취재 장소 : 북한접경지역 – 압록강 일대, 단동, 여순(뤼순)
1. 취재 동기
최근 학교에서 열린 역사 골든벨 대회에 참여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 북한접경지역 안보현장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최근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에 맞춰 이뤄진 견학이라서 더욱 뜻깊었다. 또한 곧 3학년이 되어 역사 시간에 배우게 될 독립운동의 역사적 장소인 뤼순 감옥을 방문할 소중한 기회가 주어져서 취재하였다.
2. 문화재 취재내용
· 압록강 야경 관람
중국 대련에서 기차를 타고 단동 역에 내려 저녁식사 후 압록강변의 공원으로 갔다. 저녁이라서 어두웠지만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북한 신의주를 볼 수 있었다. 북한 신의주는 평양 다음으로 북한에서 부유한 도시이지만,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건물에 불이 켜진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호텔에서도 바깥 풍경으로 압록강과 신의주를 볼 수 있었는데, 신의주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고 압록강을 감싸는 듯한 물안개도 구경하며 숙소에 머무는 동안 내내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 수풍댐
아침에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수풍댐이었다. 북학은 거의 모든 전력 공급을 이 수풍댐에 의존하고 있다. 수풍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건설한 댐으로 해방 이후 북한이 사용해오고 있는 수력발전소이다. 6.25전쟁 때 미군은 군사적 거점인 수풍댐을 세 번이나 공격하였지만, 북한은 이 댐을 보수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5원짜리 종이돈 뒷면에 수풍댐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북한에서 주요한 시설이다. 수풍댐을 본 뒤 압록강에서 기념으로 손을 씻었다.
· 하구 단교
압록강 하구에 있는 단교로 갔다. 이 다리는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 중 하나였으나 6.25전쟁 때 이 다리를 통해 중공군이 한반도로 진격하여 미군은 이 다리를 폭격해 다리 중간이 끊어진 채 남아있다. 6.25전쟁 당시 중국의 주석 모택동은 인민들이 자신들의 자녀의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모한영을 참전시켰다. 모한영은 이 하구 단교를 통해 한반도로 이동했다.
다리 위에 직접 올라가 볼 수도 있었으나 우리는 보트를 타고 강 위에서 다리를 보았다. 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북한 땅에 매우 가까이 근접하여 북한 주민들의 생활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강가에서 빨래 하는 모습, 자전거 타고 강둑을 달리는 모습, 소 달구지에 볏짚을 싣고 가는 모습, 초소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북한군까지 모두 잘 보였다.
· 호산장성 및 일보과
점심식사 후 호산장성으로 이동했다. 호산장성은 원래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지은 천리장성 끝 박작성이었으나 중국이 이 박작성을 만리장성에 포함시켜 동북공정의 일환에 따라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 왜곡 행위가 드러난 성이다.
그래서 성 어느 곳에도 이 성이 고구려의 성이라는 내용을 설명하는 안내판은 전혀 없고 오히려 이 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임을 강조한 거대한 비석이 세워져있다. 심지어 한국 관광객들은 성 입구로 바로 가지 못하고 그 비석이 세워져있는 공원을 꼭 거쳐야 하게끔 해놓아 그 속셈에 화가 났다.
호산장성 안에는 ‘일보과(一步跨)’라는 곳이 있다. 한자 뜻처럼 ‘한 걸음 타넘어가면’ 바로 북한 땅을 밟게 되는 북한과 중국의 접견지 중 가장 가까운 곳이다. 2007년 전까지는 일보과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북한에 더 가까이 접근해 북한 군인들과 대화까지도 가능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나룻배는 운영하지 않았다.
· 위화도
고려시대 말 1388년 이성계 장군이 요동 정벌을 위해 출정했지만 압록강의 섬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역사적 사건인 위화도 회군이 있었던 장소도 보았다. 현재 위화도는 북한이 소유하고 있으며 그곳에는 북한의 군인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 평양고려식당(북한식당)
북한식당으로 우리 일행이 방문하기 불과 3일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들은 출입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출입이 가능해져서 우리는 그 유명한 평양냉면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게다가 북한예술단 공연까지 관람하고 나니 왠지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한 듯 기분이 들떴다.
· 압록강 단교 (압록강 대교)
압록강 단교는 압록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이다. 이 다리의 규모는 압록강 하구의 단교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크다. 이 다리 역시 6.25전쟁 때 파괴되어 다리 중간이 끊어져 있다. 다리의 철골이 다 드러나 부서지고 찌그러진 단면을 보면 전쟁 당시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압록강 단교에서는 바로 옆에 있는 ‘조중우의교’를 볼 수 있다. 조중우의교는 현재 압록강에 있는 여러개의 다리들 중 중국과 북한 간의 교역에 유일하게 이용되고 있는 다리이다. 다리 위에는 수많은 재화들을 실은 북한과 중국의 트럭들이 오가고 있고, 하루에 두 번 운행한다는 중국에서 평양까지 가는 기차도 운좋게 보았다. 그 기차를 타면 평양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도 그 기차를 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황금평
황금평은 신의주 최고의 곡창지대로 중국과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있다. 황금평은 과거 김정운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투자를 하여 신도시를 건설하려고 한 곳이었으나 장성택이 숙청되는 바람에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만약 장성택이 죽지 않았다면 황금평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 여순감옥(뤼순감옥)
여순감옥은 과거에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때에 러시아가 식민지에 저항하는 동북3성의 중국인들을 수감하기 위해 건축한 감옥이다. 그러다가 일제 시대에 일본이 이 감옥의 규모를 크게 증축하였다. 이 감옥은 안중근, 이회영, 신채호 의사님들께서 순국하신 곳이다. 감옥 입구에는 수감자들이 옷을 갈아입는 공간이 있었는데, 수감자들이 몸에 물건을 숨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감자들은 나무막대를 뛰어넘었어야 했다.
다음으로는 옥사가 있었다. 옥사 복도의 바닥의 가운데는 길이 뚫려있고 철망을 설치해놔서 위층에서 아래층을 같이 감시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간수들의 공간 입구에는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단에 서면 모든 옥사의 복도가 한눈에 보여 쉽게 감시할 수 있다. 옥사를 지나면 간수들의 생활공간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문서를 태우고 남은 재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재는 일본이 2차세계 대전에서 패하자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감옥의 문서들을 태운 흔적들이다.
여순감옥에는 안중근 의사님이 사형 전까지 집필활동을 하셨던 독방이 있다. 독방을 지나면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사형장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우리나라의 순국선열을 먼 타국인 중국에서 이렇게 기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수감자들을 위한 병원도 있는데, 이름만 병원이지 약도 없고 위생상태가 매우 안좋아 없던 병도 얻어갈 상황이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수감자들이 일하던 공장이 있었다. 공장에는 수감자들이 일할 때 사용했던 방직기를 비롯한 여러 기계들이 있다.
· 관동법원
1906년 일제가 관동도독부를 설립하면서 설치된 관동법원은 러시아 참모관저로 이용되었던 두 단층집 사이에 2층집을 지어서 지금의 건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층별로 각각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이 합동사무를 봤다.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한국과 중국의 독립 운동가 800여명이 재판을 받았다.
3. 내가 선정한 문화보물 및 선정이유
나는 동북공정의 현장인 ‘호산장성’과 분단현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압록강 ‘하구단교’를 문화보물로 선정하고 싶다.
이번 안보현장 견학을 통해 나는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참담한 결과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은 본래 한 민족이고 통일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니 분개하는 마음이 솟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 민족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하구단교였다. 이 하구단교를 통해 중공군이 우리나라로 진격했고 모택동의 아들 모한영이 이 다리를 건넜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구에서 배를 탄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배를 타고 북한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북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경험이 그 동안 TV를 통해서 접했던 북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충격적인 감동을 느꼈다.
4. 문화탐방에서 만난 사람과 인터뷰
Q: 견학팀을 인솔하시는 선생님께 좋은 통일은 어떤 통일일지 여쭤보았다.
A: 남한과 북한이 일제 강점기 이전처럼 하나의 국가 체제로 하루 빨리 되돌아가야만 진정한 한민족의 통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만약에 무리하게 중국이나 미국 등 강대국의 힘을 빌려 국가 체제로서의 통일을 서두른다면 진정한 민족 통일로서의 의미는 퇴색되어 또다시 분열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선 남한과 북한의 교류가 활성화되어 국가 체제로서의 통일 이전에 국민들의 정서와 생활 문화가 우선 동화되어 사회가 하나되는 사회문화 통일이 우선시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 그러므로, 최근 어렵게 다시 평화의 길로 들어선 남북 관계를 계속 잘 유지하고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겠다.
5. 주변 문화재 소개 및 해당 문화재를 찾아가는 교통편
1905년에 조성된 시 북쪽 산등성이에 자리한 금강산공원이 있다. 산의 정상에는 단동 시내와 압록강과 마주한 신의주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팔각정 금강정이 있다. 여기에서 매년 단동시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민속축제가 열린다.
또한 한반도와 국경에서 자유무역의 행해지는 호시무역구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 때 축조된 성인 비사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