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사는 신기선 광장시인이 병원 최초기록 자료 6장 중에서 3장을 보내지 않아서 추후 재취재가 필요하며, 신기선 시인 본인의 요구에 의해 원문 그대로 개재합니다. / 편집자주
[서울교육방송 공동취재단]=현대에는 다양한 유형의 민주화 투쟁이 존재한다. 나라위해 목숨을 바치는 직접적인 투쟁을 비롯하여 그의 정신을 기리며 광장에서 외치는 열정적 투쟁까지 그 모습들을 우리는 광장에서 만날 수 있다. 오늘은 광장시인 신기선 선생님의 광장 정신을 만나본다.
신기선님은 5.18정신으로 다시 태어난 투사다. 신기선님은 5.18정신으로 다시 태어난 투사다. 박승희 열사의 죽음을 보고 스스로 분신하여 그 의로움을 지켜내려고 생을 결정하였으나, 옆에 있던 동지들이 불을 꺼서 목숨을 건져낸 역사를 가지고 있는 투사다.

신기선 광장시인
불의에 맞서 직접적으로 죽음으로 그 부당함을 알리려했으나 불은 꺼지고 불의는 적폐로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투쟁을 계속한다. 온몸이 불에 타서 땀구멍이 막혀버려서 여름이면 지옥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선님은 광장에서 외친다. 그래서 그는 광장시인이 된 것이다.
신기선님의 삶은 매일매일 시인의 삶과 같이 펼쳐진다. 직업과 투쟁과 그의 시가 한몸처럼 움직인다. 그의 투쟁사는 일상으로 이어지고, 그의 시로 이어진다.
“삶은 하나다. 일 따로 집회 따로 놀이 따로가 아니라, 일이 집회고 집회가 놀이고 이 놀이가 삶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광장시인 신기선님의 철학이고 소신이다.
“1987년 6월 항쟁때도 신군부는 계엄령을 만지작 거렸지요. 그러나 계엄령을 내렸을때 시민들은 어떻게 나올것인가를 80년5월광주에서 배웠던 신군부는 계엄령을 못내렸지요.
아마도 미래에도 반역을 꿈꾸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 또한 계엄령을 내리지 못할것입니다.
시민들을 쏘면 시민들도 쏜다라는 역사적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일것입니다.
미래 반역 세력에 대한 억제력. 이것이 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가졌던 항쟁의 위대함이였던 것 입니다.
미완의 승리이자
진상 규명되지 못한
현제 진행형인 오월
책임자 처벌없는 5월은 계속되고 있는 것 입니다.
…
뒷줄에 서서 살아 남았다고
좋아 할 것도 없는
살아 남은 자의 서글픔으로! (광장 시인 신기선)”
오늘도 광장시인의 외침은 산천에 울린다. 도심에서 시골로, 지하철에서 버스로, 빌딩에서 초가로, 사람과 사람사이, 민주와 비민주 사이사이로 그의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서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신기선님이 올린 병원최초기록 화상 입원 경위가 적혀있다는 증거자료로 제시했으나 민주 투사 분신으로 인한 입원이라는 표기가 적혀있다는 페이지가 누락되어 재요청함
*** 해당 기사는 신기선 본인의 기사제보에 의해 기사가 작성되었습니다. / 편집자주
[해당 기사와 관련한 독자제보]
저는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협상역할을 하고 광주에서 살고 있는 김ㅇㅇ입니다.
송구하지만 선생님의 기사와 관련 궁금한게 있어 문자 남깁니다.
지난해 6월24일자 “광장시인 신기선의 광장의 외침”제하의 기사 내용 중 신기선님의 분신과 관련 박승희열사의 분신(죽음)을 보고 분신했다고 했는데 신기선씨의 유서라도 있었는지요?
그리고 전남대병원의 의무기록지 내용 중에 그와 관련한 민주화를 위한 분신시도 화상으로 입원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있었는지요?
제가 이 기사와 관련하여 궁금증을 확인하고자 한 이유는 5.18민주유공자도 그렇고 이후 민주화운동 관련 민주유공자에 대하여 수구세력들이 가짜 운운하는 일들이 많기에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 단톡방에서 신기선님과 관련한 이러저런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기에 여쭙는 것이니 사실확인 자료를 첨부해주셔셔 모든 의혹을 밝혀주시고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편한시간에 전화나 문자로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