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신혁 문화리더
10월 말,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교에서 단체로 소규모 테마여행, 이하 수학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제주도로, 비행기를 타고 약 한 시간 걸려 도착했다. 환경이나 볼거리 등에서 서울과는 확실히 차이가 크게 났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3일간 즐거운 여행을 하자 다짐했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제주도에서 기다렸던 것은,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학교 역사 동아리에서 제주 4.3사건을 방문하게 될 전교 학생들을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있다. 학교 건물 곳곳에 제주 4.3사건을 알리는 피켓을 제작하고 학교 전체에 유인물을 배부하여, 제주 4.3사건을 잘 모르는 학생들도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을 알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내가 방문할 유적지와 학생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수학여행은 총 2박 3일로 진행되었다. 그중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 방문한 곳이 제주 4.3평화공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제주도에서 방문했던 곳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였기 때문에 서울에 가서도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던 것 같다.
수학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10월이다 보니, 평화공원에선 엄청나게 많은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우리 학교와 같이 제주 4.3사건에 관해 공원과 기념관을 관람하러 온 학생들로 북적북적했다. 관람 시간으로는 1시간이 주어졌다. 입구에서 본 제주 4.3평화공원의 지도를 보아하니 1시간 안에 공원 전부를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처음, 제주 4.3평화공원 한쪽에 세워진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영상 하나를 시청했다. 제주 4.3사건에 대해 간략하지만, 자세하게 설명해 준 영상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은 내가 제주 4.3사건 홍보를 위해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이미 시청했던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다시 한번 더 시청했다. 관련된 장소에 와서 시청하는 것과 집에서 시청하는 것은 느낌이 엄연히 달랐다. 영상 시청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전시관 관람을 시작했다. 전시관에선, 제주 4.3사건에 대해 영상보다 더 자세한 정보와 사료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남한에서의 단독 선거를 추진하던 이승만 정부와 달리,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북한과의 공동 선거를 주창하던 제주도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민간인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제주도에서는 일반 직장인뿐만 아니라 공무원들까지도 단합하여 대규모로 총파업을 진행했는데, 이를 3.10 총파업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 제주도를 일시적으로 지배했던 미국 군대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총파업을 보고 제주도가 우익의 반대편에 선 좌익들의 소굴, 속된말로 빨갱이 소굴(레드 아일랜드)라 부르며 서북 청년단 등의 우익 단체와 협력하여 이 대규모 파업을 진압하고자 했다.
대규모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미군정과 우익 단체는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결국, 진압군은 폭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오라리 방화 사건’이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소집된 어느 우익 단체의 청년 단원들이 제주읍 오라리의 일부 가옥에 불을 지른다. 주민들은 마을이 불타자,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달렸지만, 마을 주변에 포진해있던 군인과 우익 단원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또한, 오라리가 불타는 모습은 영상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기에 이를 우발적인 사고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몇몇 사람들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공식적인 통계자료에 의하면, 약 14,000여 명의 희생자를 집계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공식적인 조사와 발표 자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임기 시절 작성되어 비공식적인 피해자, 희생자 수를 모두 집계한 진상규명보고서는 희생자 수를 약 3만여 명으로 책정하였다. 이는 당시 제주도민의 1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제주 4.3평화공원과 제주 4.3평화재단은 제주 4.3사건 당시 희생하신 많은 제주도민의 넋을 기리고 실종되어 여전히 찾지 못한 분들의 시신을 찾고 관련 자료를 조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의 좌ㆍ우익 대립은 제주 4.3사건에서 과열되어 6·25전쟁을 통해 절정에 다다랐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어떻게 보면 분단의 발단이 된 제주 4.3사건을 알리는 제주 4.3평화공원에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기증받아 전시해 놓기도 했다.
무참히 학살당한 도민들을 기리기 위해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조심해야 할 이 공원에서 몇몇 학생들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른 것을 몇 번 보았다. 또한,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비와 위령탑 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도 봤다. 이는 제주 4.3사건 당시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모욕이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망신시키는 행위이다. 공적인 자리에선, 최소한의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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