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
혁신교육의 역사가 이제 10여 년이 되어간다. 사실 혁신교육의 기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를 가지고도 다양한 의견이 가능하다. 남한산초 등의 학교에서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교사들의 실험이 시작된 것을 기점으로 잡기도 하고, 전교조 교사들이 대거 해직된 1989년을 잡기도 하며, 2000년대 초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을 주목하기도 한다. 어떤 기점을 잡더라도, 국가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된 제도권 공교육이 ‘성적 줄 세우기’로 극단화되어 국ㆍ영ㆍ수 일등이 아닌 학생들은 학교에서 ‘비(非)존재의 존재’가 되며, 교육은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목적가치를 잃어버리고 일류대학에 가기 위한 도구로 왜소화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이런 교육현실 탓에 학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학생들도 나타나게 되고 학교에 가지만 ‘잠자는 학생’도 대거 나타나게 되었다. 이를 상징하듯 ‘학교가 죽었다’는 담론이 유행하게 되고 그 ‘죽어가는 학교’로부터 학교를 탈주(exit)하는 ‘탈학교’현상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제도권 공교육 외부에서 ‘대안학교’ 흐름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런 학교 외부로의 탈주와 탈학교, 대안학교 시도에 대응하여, 제도권 공교육 내부에서도 공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노력이 자발적 교사들에 의해 다양하게 진행되었고, 그중 대표적인 흐름이 ‘혁신학교’였다. 즉 대안학교 운동이 죽어가는 학교에서 외부로 탈주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한다면, ‘혁신학교’등의 흐름은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개혁(reform) 노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시대든 교육을 포함하여 기성체제가 경직화되어가고 원래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져갈 때, 그에 대응하여 외부로의 탈주와 내부에서의 개혁노력이 전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학교 현장의 개혁 노력이 퍼져가며 큰 시대적 흐름으로 확산되는 와중에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그 혁신적 흐름을 대변하는 ‘진보’교육감이 몇몇 시도에서 당선되더니 최근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17명 가운데 14명까지 약진하게 된다. 이렇듯 학교현장 변화의 물결은 이제 ‘지방’교육정책과 행정 수준으로 비상한 것이다. 이를 통칭하여 지금은 혁신교육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서울 혁신교육은 부침이 있었지만, 경기도는 2009년 김상곤 교육감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혁신교육 정책이 전개되었다. 경기를 비롯하여 전북, 강원, 광주, 전남 등이 혁신교육 역사에서는 선배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혁신교육’이 이제 10여 년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이처럼 거대한 흐름으로 확대되는 혁신교육에 대한 비판과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사실 어떤 운동이나 새 물결도 그것이 대세처럼 확산되면, 초기와 같이 순수하게 열정과 헌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어서 때로는 도덕적 해이도 나타나고,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인 문제들도 나타나게 된다. 또한 지방교육청 수준에서는 그것이 ‘지방교육권력’이 되면서 반대자들의 비판도 나타나게 되고, 또한 ‘정치화된’ 비판들도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혁신학교가 기초학력이 부족하다’, 혹은 ‘공부를 안 시킨다.’ 등의 주장도 있다. 여러 비판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혁신교육은 급격히 확산하여 지방교육행정의 대표적 정책이 되면서 교육 관련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혁신교육에 한 단계 높은 도약이 요구된다. 이런 취지에서, 지난 혁신교육 10여 년을 ‘혁신교육 1.0 시대’라고 한다면, 이제 맞이하는 10년을 ‘혁신교육 2.0 시대’로 규정하려 한다. 물론 지역마다 혁신교육 시기 구분은 다양하다. 경기의 경우 혁신학교를 혁신교육의 중심에 놓고 초기 출현기의 ‘혁신학교 1.0’, 성장 발전하는 시기의 ‘혁신학교 2.0’, 최근의 ‘혁신학교 3.0’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전남은 마을결합형 교육을 구현하는 혁신교육지구를 중심에 놓고 ‘혁신교육지구 1.0’과 ‘혁신교육지구 2.0’을 구분하고 있다. 시기 구분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지난 10여 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여, 혁신교육을 더욱 혁신해야 하는 과제가 혁신교육 주체에게 놓여 있다.
‘혁신교육 2.0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현재 처한 어려움을 모면하겠다는 자세로는 혁신을 더할 수 없다.
일차적으로 ‘저항의 마인드’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도 혁신교육에 반대하는 힘이 강력하다거나, 인력이나 물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지방교육청 수준에서 10여년의 기회를 준 학부모들에 대하여 ‘총체적 책임의 마인드’로 접근하여 혁신에 혁신을 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세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성찰적 관점이다. ‘혁신교육 1.0 시대’의 명암을 반성적으로 바라보면서 지난 시대 부족함을 보완하려는 적극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기초학력이나 정치적 편파성, 교권 등에서 일부가 제기하는 문제가 때로는 억울하고 틀릴지라도 비판의 지점을 반성적으로 살펴서 이를 보완하고자 노력을 해야 한다. 둘째는 교육본질 회복의 관점이다. 교육혁신은 과거 교육의 구습이 된 부분을 변화시키려는 것이지만, 교육혁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더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요즘은 ‘지덕체(知德體)’라는 고전적인 교육목표의 절절한 중요성을 새삼 느끼곤 한다. 특히 미래교육이 주목 받는 현 흐름에서 인성 혹은 덕성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간과되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이를 살리는 방향을 모색 중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미래지향적 관점이다. 교육과 교육혁신의 콘텍스트가 부단히 변화하고 있고, 현재는 그것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 시대로 표현되고 있는바, 이렇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 콘텍스트 변화에 부응하여, 혁신교육의 내용과 환경을 미래지향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기업혁신, 국방혁신, 조직혁신, 산업혁신 등 혁신이라는 말이 대단히 폭넓게 사용된다. 그 중에 교육도 존재한다. 이제 ‘혁신교육 2.0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우리가 그동안 ‘혁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 온 것에 다시 혁신을 더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혁신에 혁신이 더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시간의 흐름은 단절이 없고 연속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시간의 흐름에 점을 찍어 시간을 나누어 2019년과 2020년을 구분한다. 뭔가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2020년 벽두에 ‘교육혁신의 혁신’이라는 화두로 ‘배움이 즐거운 학생-가르침이 설레는 교사-함께 성장하는 교실’을 향해 새로운 변화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