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방 대 폐쇄’의 관계, 이중언어정책, 미래의 경제에 대해 생각했다.
책을 한번 읽어보라는 권면을 받고, 연휴 기간에 책을 들었다. 투자자나 경제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과 비판적 지식인/공공 행정가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글로벌 투자자의 관점에서 세상, 특히 동아시아의 미래변화를 어떻게 보는지가 궁금하였다(서평 겸 적어놓는 것이니 안 보실 분은 안 보셔도 됩니다!).
짐 로저스는 버핏, 소로스와 함께, ‘세계3대 투자가’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어디에 투자해야 돈을 벌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것은, 그는 세상의 변화를 비록 투자의 관점이지만 중장기적인 변화의 관점에서, 그리고 역사의 사례를 통해서 조망해보고자 하는 그의 자세였다.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긴 흐름으로 세상의 변화를 읽고 앞을 내다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게 떠오르는 법이다”(5)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누가 봐도 빛깔 좋게 가공된 다이아몬드 보다 세상이 쳐다보지 않는 원석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 진짜 보석이다(5)”라고 투자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원석에서 중국, 북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쇠퇴일로에 있고, 자신의 모국인 미국은 패권을 중국에게 내어주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중국은 세계의 새로운 패권국에 가장 근접한 나라로 보고 있다.
나아가 한반도를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로 보고 있다. 물론 남북통일의 가능성, 최소한 북한의 개혁개방 등을 전제하면서, 북한을 개혁 개방 이후에는 ‘풍부한 자원, 근면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국민성’으로 인하여 잠재력이 엄청나게 높은 나라로 보고 있고 스스로도 투자하고자 대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사실 로저스가 투자 측면에서 매력적이라고 하는 것은 개방 이후에 진정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절대평등주의적인 저발전과 정체’ 상태에 놓여었다고 한다면, 이제 경제의 역동적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변화는 거대한 투자이익의 이면에 이전과는 다른 경제적 격차, 경제적 사회적 유동성, 이른바 ‘관치’의 약화와 전통적 언어로 하면 ‘무정부’적 상황, 사회적 갈등 확대 등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의미한다. 나는 폐쇄는 폐쇄대로 모순을 갖고 개방은 개방대로 모순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이후의 도전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개방 이후,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관리를 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도전일 것이다. 그에 따라, 중국 식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베네수엘라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역시 매력적인 나라인데,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돌파구가 역설적으로 남북통일 혹은 북한과의 관계 확대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경제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한국은 산업은 앞으로 20년 동안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68)’는 예언(?)에 흐뭇해지는 느낌이다. 그는 ‘내가 청년이라면 이주하고픈 네 나라(217)’로서 한국,중국, 콜롬비아, 베트남을 들고 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사고하지 마라?!
나는 역사와 투자를 보는 그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다른 사람과똑같이 사고하지 마라(15)고 말하는 점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고하면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첫걸음이다(15)”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혁신 교육철학으로서 ‘일등주의로부터 오직한사람( only-one) 교육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독자성에 기반하여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교육혁신의 큰 방향성을 이렇게 설정하고 있다. 나는 비록 위치는 다르고 ,그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남과 다르게 (경제적) 세상을 보기를 원하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의 모든 존재의 독특성과 그에 기초한 각자의 특유한 인식을 가져야할 당위성에서는 일치한다는 생각을 했다.
*개방과 폐쇄의 관계?!
나는 오랜 동안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문화의 ‘개방 대 폐쇄’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 그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대체로 ‘진보는 경제적 개방에 따른 문제점에 주목하고, 보수는 경제적 개방에 따른 이익’에 주목한다. 나는 당연히 이것은 가능한 시각의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가 개방에 따른 문제점을 주목하고 보완하기 위한 문제제기는 좋으나, 개방 자체의 반대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국가사회주의의 실패는 그것이 사회주의였기 때문이 아니라 ‘쇄국정책에 기초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고정되어 있으면 그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발전과 경제적 변화가 있고, 또한 ‘생산력의 발전’이 있는 조건에서는 폐쇄가 가져오는 사회과 경제의 정체를 막을 수 없다. 사실 이 점은 60년대 박현채 대 박정희의 인식론적 대립에서도 표현되었던 바이다. 개방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그래서 그것을 주목하지만, 60년대 식의 민족자립경제의 관점이나 70년대의 종속이론의 관점에서 폐쇄경제를 지향했다면, 오늘은 한국경제는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사실 박현채의 입장과 종속이론의 흐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이 미래경제를 폐쇄적 자립경제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지금도 세계경제에 대응하는 폐쇄적 자립경제가 답이 아니고 세계경제화에 대응하는 세계정부, 지역(regional)정부 식의 정치적 대응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방에 따른 불평등화를 상쇄하는 별도의 정책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등 글로벌 위험전염병의 경우 준세계정부적 기능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현재 브렉시트 등으로 도전을 받고 있지만, EU가 유럽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 것을 나는 연상한다).
로저스가 폐쇄성을 통해 쇠락을 길을 가는 나라의 대표로 일본을 들고 있다. 일본의 쇠락을 단정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시각에 있다. “나라의 문을 닫고 성공한 예를 나는 본 적이 없다. 한 군데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외국인에게 우호적인 되라. 일본에는 외국인이 더 필요하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서 그들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래도 한마디하자면 내가 지금 일본에 사는 열 살짜리 아이라면 당장이라도 일본을 떠날 거라는 사실이다(97)”. 상당히 독하게 일본의 쇠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으로서 일본의 순혈주의적 폐쇄성과 이민에 대한 폐쇄적 태도를 중시하고 있다.
폐쇄성으로 나라가 쇠퇴한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책 속에서 인상적인 귀절은 아래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국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영국의 깃발>이라는 시 속에서 “영국밖에 모르는 사람이 영국의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이냐?”라는 귀절을 즐겨 인용한다. 이 점은 나라가 폐쇄적으로 살면, 자기나라, 자기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보는 일면적 인식이 사회발전을 제약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여러 나라의 문화와 문물, 경제, 삶의 방식, 다른 인식이 섞이면서, 한 사회와 경제의 역동성이 생겨나고 그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나는 이 점에서는 동의한다.
그는 폐쇄성이 나라를 패망하게 한다고 말한다. “외국인을 배제하고 문호를 닫은 나라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고 역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해준다. 외국인은 새로운활력, 새로운 혈통, 자본, 아이디어, 흥분, 자극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번영하는 나라는 외국인을 필요로 하고 외국인도 그런 나라에 매력을느낀다. 그런데 국내에 문제가 일어나서 불만이 쌓이면 무슨 일이든 외국인 탓으로 돌리다 결국에는 추방해버린다. 외국인을 추방하는 것이 더 문제가 되는데도 말이다(81)”. 이런 로저스의 시각에서 보면 일본의 외국인에 대한 폐쇄적 태도(조선인에 대한 가혹한 태도 등을 연상하게 된다)에 대해 비판적이며, 기본적으로 외국인, 외국의 문화, 이민자, 언어에 대해 개방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구가 줄고 빚이 늘어나는데도 외국인을 받지 않는것. 그러나 나라가 망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라고 한다”(76)고 말하면서 이의 대표적 사례로 일본을 들고 있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이민자를 배척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민자를 너무 빨리 많이 받는 것이 요인인지도 모른다….기업에서 일할 노동자도 부족하다. 그 부족분을 메우려면 출산율을 올리거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96)”. 심지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나라는 번영하고 거부하는 나라는 망한다(92)”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이민을 선택한 사람이 대부분 용기있는 사람들이고 역동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로 보고 있다. 그런 역동성이 계속 유입되어야 한 나라의 경제도 역동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체로 번영하는 나라는 이민자에 대해서 관용적이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민자에 대해 공격적인 된다. 미국도 그러하다. “외국인을 받아들이면 이와 함께 다양성과 새로운 아이디어, 자본이 들어와서 그 나라는 더욱더 번영할 것이다”(37)라고 말한다.
일본의 패망적 요소의 중요한 한 요인인 바,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이민자에 대한 폐쇄성을 질책하고 있는데, 한국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다행히 그는 한국이 더 성장할 거라고 단정하면서 그 이유로서 북한의 개방과 남북통일이라는 요인과 함께, “한국인들의 기질이 일본인보다 다소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보다 변화를 좋아라고 외국의 문물을 더 받아들이는 편이다(48)”라고 말한다.
*이중언어정책?!
로저스의 책을 읽으면서, 서울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이중언어 정책’과 그로 인한 일부 학부모의 우려를 연상해냈다. 그의 책에는 두 손녀에 대한 은근한 애정이 곳곳에 은밀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두 손녀가 미래의 패권국가가 될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싱가포르에 이주했고 거기서–당연히 영어는 하겠지요–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몇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나는 지금 딸들에게 표준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싱가포르에 살고”(74)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그의 책 전체를 통해서 미국의 패권국가로서의 몰락, 일본의 쇠퇴, 그 반대로서의 중국의 미래 패권국가로의 부상을 확신을 가지고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미래의 중심국가의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투자에 큰 기반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풍문에 따른 투자나 단기 투자 보다는 오히려 오래고 깊은 리서치를 통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보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언어 중시는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들에게 한두개의 외국어를 하라고 권유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젊은 사람에게는 외국어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나에게 후회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젊은 시절 외국어를 배우지 않은 것이다. 언어를 하나라도 많이 알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내용이 극적으로 달라진다. 미국을 떠나 싱가포르에 이주한 이유는 두 딸들이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를 바라서다. 현재 세계 공통어는 영어지만 장차 중국어가 세계를 좌우할 언어가 되리라고 예전부터 확신했었다(216)”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그의 언어중시는 앞서 서술한 ‘개방성’과도 연관되고, 구체적으로는 외국인과 이민자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논리와도 연관되어 있다. 당연히 그는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가로 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서 전제하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이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을 가볍게 넘어서서 서술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중국이 전근대사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선두에 위치에 있었고, 오히려 유럽은 15-16세기에 중국의 발명품인 화약, 나침반, 활판인쇄을 도입하여 상용화함으로써 도약하여 중국을 앞질렀으나, 이제 근대 수백년을 뒤로하고 다시 중국이 세계경제의 패권국가로 회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래의 경제와 투자의 향방?!
로저스는 좋은 투자기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하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그는 ‘돈과 경제의 미래’에서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경제, 그리고 돈을 흐름을 바꿀 것이다. 특히 핀테크와 캐시리스 경제는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쇠퇴하는 산업, 부흥하는 산업이 나오게 되어 있다”(222). 그러면서 ‘오래된 비지니스가 도태하면 새로운 비지니스가 탄생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나는 최근에 중국을 가면 우리 보다 5-10년 뒤쳐 있던 중국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전자상거래, 캐시리스 경제라는 점에서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로저스도 그의 책에서 지적하듯이 아프리카에서는 ‘유선’전화시대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무선’ 통신시대로 이행하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절약하고 어떤 점에서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온 나라 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나는 문재인정부에서도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득 주도성장은 기본적으로 성장의 불균형을 보전하면서 성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면, 혁신성장은 새로운 경제적-기술적 발전의 공간을 지원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이 두가지 모두에 비판적인 논의도 많지만). 경제적-기술적 변화의 방향을 예견하고 그에 대응하는 잠재력을 확장하고 현재화되도록 지원하는 것은 모든 산업정책 및 경제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한가지 개인사적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집안에 60년대 이른바 ‘서울 상대’를 나온 분이 있었다. 그 분이 대학에 졸업하고는 어느 직장이든 다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60년대 말에는 굴뚝산업의 부흥기였고 그래서 ‘석탄공사’를 갔다. 그런데 나중에 에너지의 중심이 석탄에서 석유로 이동하고 경제와 금융부문이 활성화되면서,집안 어른들은 그때 은행으로 갔었어야 하는데하고 탄식하는 말을 나에게 자주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은행업이 쇠퇴산업일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로저스는 “은행이란 존재 자체는 사사리지 않더라도 지금 은행이 담당하고 있는 기능은 인터넷으로 넘어갈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과 일본에 있는 은행의 점포는 언젠가 노인들의 놀이터가 될 지도 모른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쫓아가지 못하는 노인들만이 실제로 점포를 방문한다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일이 전 세계에서 벌어질 것이다(225)라는 귀절을 읽으면서, 우리 집안에서의 과거 기억이 떠올랐다. 이는 AI와 블록체인 기술의 영향으로 현존하는 은행들과 산업들이 급변할 것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비판적인 지점들
사실 나는 로저스의 책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하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지만, 혹시 배울 점이 없는가하는 시각에서 대했다. 몇가지 비판적인 지점들이 당연히 있었다.
1. 그는 ‘좋은 독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권위주의적 체제이거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집권했지만, 경제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 경우를 말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가 싱가포르에 살고 있어서 그렇겠지만, 싱가포르의 이관유 수상이 만들어놓은 경제적 업적과 유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서방식의 선거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중국의 시진핑 같은 지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 밑바닥으로부터 혹독한 과정을 통해 지도자로 부상하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이는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 보다 공평한 제도다. 미국에서는 텔레비전 화면발이 잘 받는 돈 많은 부자가 옷을 잘 차려입고 그럴싸한 연설을 하면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144)”라고 하면서 트럼프와 대비시키고 있다.
2. 그는 도처에서 곧 세계대공황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책이 2000년 초반부터 한국에서 회자되기 시작했으니, 이런 예언을 지속적으로 해온 셈이다. 특히 미국의 쇠망을 자주 지적하고 있다.
3. 다음으로 그의 서술이 대단히 ‘단정적’이라고 하는 점이 나는 약간 거슬렸다. 사실 미래를 예견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지식과 인식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에, 또한 무수한 우연적 요인의 결합이 역사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4. 중국의 방식을 한국에도 권유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먼저 시도하라,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정부가 규제하겠다(선상시, 후관제 先賞試, 後管制)(134)’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한국에도 권고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은 중국과 똑같이 교육이라는 토양이 있는데, 거기서 ‘먼저 해보자’는 도전과 그에 대한 관의 관용적 자세는 점점더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산업 분야의 경우에는 경청할만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5. 그는 미국CEO인 프랭크 보먼의 말, ‘파산없는 자본주의는 지옥없는 기독교’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시장의 가혹성을 과도하게 정부가 개입해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부분에 대한 질책의 맥락이다. 그러면서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한 금융위기에서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기업과 관료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그것이 가져온 파장 때문에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점은 사실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파산으로 인한 서민의 파생 고통을 완화하고 보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필요한데, 사태를 그렇게 까지 오게 한 금융과두세력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은 우리의 98년 금융위기 사태에서도 목도한 바이다.
6. 그는 일본의 저출산으로 인해 ‘학생이 부족해서 폐교로 내몰리는 학교가 적지 않은’ (103)에 대해서, 일본의 교육비지니스가 역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라고 말한다.오히려 밖으로 눈을 돌려 외국학생들을 유치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청소년들이 ‘대학 수가 적어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대학 가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103-4). 그러나 이미 한국도 상류대학을 빼면 이미 그런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도 이렇게 변화했다는 점을 ‘만나면(?)’ 이야기해주어야겠다.
7. 그는 1980년대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을 수업에 초청했는데,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취하려 하고 있고, 증권거래소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려 한다라는 말을 듣고(204), 신속하게 오스트리아 증권거래소에 투자했다라는 것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혹시 한국에서는 ‘내부자 정보’라고 해서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그 귀절을 읽으면서 했다.
어쨋든 휴일, 나하고 시각이 다른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많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