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씨앗으로 이 땅에 뿌려진 교회는 베들레헴에서 아주 조그맣게 출현했다. 한 사람이 시작한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2천년이 지나도록 교회는 5대양 6대주로 확산됐다. 민들레 홀씨 되어 오늘도 교회는 세상의 밭에 뿌려지고 있다. 교보문고에는 세계 교회사를 다룬 책들이 많지만, 대부분 연대기 순으로 서술된다. 연대기적 교회사는 사건 중심이고, 인물 중심이다. 중요한 교황, 중요한 신학자, 중요한 왕을 중심으로 교회의 변천사를 다룬다. 이런 이유로 연대기적 교회사는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주제들이 빠진다. 가령, 헌금에 관하여, 이단에 관하여, 봉사에 관하여, 성경번역에 관하여, 정치에 관하여, 성령에 관하여, 교파싸움에 관하여….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주제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세계 교회사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학문의 목적은 ‘내가 속한 교회를 알기 위해서’이다. 나의 주변을 알면서 궁극적으로 나를 알기 위해서다. 세계 교회사도 나와 한국교회를 알기 위해서 주제별로 재편집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신학자는 세계교회사를 연구하는 신학자와 경계를 구분한다. 학문의 영역에서 두 집단은 밥그릇을 나눠 가졌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세계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는 함께 연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경계 허물기’이므로!!
기독교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공기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가 무엇인지 알려는 사람은 드물다. 기상학자를 제외하면 공기가 어떤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은 미세 먼지에 민감하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다니겠지만, 고기압과 저기압을 따지거나, 바람의 방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산이 있으니까 산을 오른다는 말처럼,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절에 다니는 사람에게 절이 자연스럽듯이….
우리는 “교회는 하나다”라고 믿지만, 한국교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교회는 미국적 교회 스타일이다. 유럽형 교회는 아니다. 유럽에는 국가를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가 있었다. 카톨릭 교회가 하나로 존재했고, 루터의 종교혁명 이후 국가별로 루터파, 칼빈파, 카톨릭 등으로 종교가 구분됐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미국에는 모든 인종이, 모든 교파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다원주의’로 나라가 세워졌다. 미국교회는 종교 다원주의이며, 기독교 백화점과 같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수많은 기독교들이 존재하면서, 기독교의 강물이 출렁거린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교회가 전파되어서, 한국교회는 수많은 교파들이 서로 엉켜서 존재한다.
기독교는 분명 하나의 고유명사이지만, 초대교회부터 이 땅에 기독교는 단 한번도 통일된 적이 없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이 날마다 싸우면서 서로 성장했듯이 기독교가 그러했다. 물론 공통점은 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성령 등은 동일하다. 마치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하나님’이 같듯이, 기독교 교파는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하지만, 얼굴과 생김새와 형태와 제도는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수많은 기독교들이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수많은 기독교들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세포분열을 일으키면서 ‘흩어짐의 씨앗 운동’으로 복음이 확산됐다. 마치 브라운 운동처럼!! 이것이 복음의 디아스포라이다.
기독교들끼리 서로 대립하면서 복음이 전파될 때도 많았다. 갈등과 차이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다름의 다양성’ 때문에 분열은 불가피했다. 알미니안파와 칼빈파는 서로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 둘은 원수사이다. 서로를 이단으로 정죄한다. 마치 남한과 북한처럼!! 성령의 은사는 지금도 진행한다는 성령파도 이단으로 종종 정죄받는다. 같은 예수님을 믿지만, 서로에게 등을 돌린 교파들이 함께 으르렁거리며 공존하는 세계가 기독교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대해 정의한다면, 전체로는 하나의 큰 교회로서 ‘우주적 교회’가 존재하지만,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회들은 다양한 얼굴과 형태와 모습으로 각각 다르다.
교회 탄생은 언제일까? 교회는 분명히 예수님을 통해 시작됐다. 정확한 탄생 시점은 언제인가? 학교와 국가는 설립날짜가 있다. 교회의 탄생일자는 언제일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어떤 성경학자는 “기독교 역사는 3천년이다”라고 설명한다. 왜냐면,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 1천년의 기간도 교회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1천년의 준비기간을 통해 예수님이 오셨고, 이후 2천년 동안 교회는 성장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 1천년 동안 유대교가 형성됐고, 세상에는 헬레니즘이 있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융합한 상황속에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셨다. 성육신의 탄생 배경에는 시간과 공간이 있는데, 이스라엘 땅과 헬레니즘 문화가 시대적 배경이다. 기독교의 뼈와 살은 ‘유대교’와 ‘헬레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를 알려고 한다면, 예수님과 12사도는 뼈속까지 유대인이었음을 기억해야한다.
성경에서 교회는 ‘에클레시아’라고 불린다. 그리스에서 ‘도시’에 존재하는 작은 공동체를 ‘에클레시아’라고 불렀다. 한국으로 말하면, 작은 반상회 정도다. 학교로 말하면, ‘동아리’라고 할 수 있다. 조기 축구회, 동문회 등등 단체가 설립되는데, 00 협동조합의 이름이 공식적 명칭이 될 수도 있다. 협동조합은 법률적 단어인데, 에클레시아가 그리스에서 사용된 공동체 명칭이다. 바울과 그 동역자들은 선교활동을 통해 세운 교회들을 ‘에클레시아’라고 불렀다.
마태복음 16장,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냐”라고 질문을 던지셨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 신앙고백이 교회설립의 기점이다. 교회가 탄생한 지역명이 특별하다. 로마제국의 설립자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이름이 합성된 도시명이다. 교회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이 땅에 탄생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는데, 그 반석의 정의를 놓고 카톨릭과 기독교는 의견이 갈렸다. 카톨릭은 베드로를 반석으로 해석하고, 제1 교황을 베드로로 본다. 그러나 기독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반석으로 보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반석으로 해석한다. 교회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 믿음이다. 교회 주춧돌이 베드로인지, 예수 그리스도인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었지만, 그때 교회가 탄생한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기관과 조직의 모습을 갖춘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부터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온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으로 불리는데, 사도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교회를 설립하고 운영한 이야기다. 성령이 강림했을 때, 강한 바람과 함께 불의 혀가 각 사람에게 각각 임재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온 해외동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로 방언이 터졌다. 예언의 내용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관한 것이었고,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말세가 일어났다”고 선포하면서, 3천명이 세례를 받는 선교활동이 일어났고, 교회가 그때 공식적으로 설립됐다. 베드로와 사도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 공동체는 날마다 떡을 떼면서 함께 먹고 함께 살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도 드렸다. 유대교의 안식일과 성만찬을 함께 드렸던 곳이 예루살렘 본교회다. 유대인들의 3가지 정체성인 ‘성전과 할례와 음식법’이 예루살렘 본교회에서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AD70년 로마제국은 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하고,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제사장 그룹을 직장을 잃고, 사두개인들도 사라졌다. 반면 성경을 중심한 바리새파가 이스라엘의 지도부로 급부상했다. 사두개파는 성전과 제사를 중심했고, 바리새파는 율법 말씀을 중심하고 성경공부를 강조했는데, 성전이 사라지면서 바리새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성전이 있을 때는 사두개파가 여당, 성전이 멸망한 이후에는 바리새파가 여당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당하면서 기독교와 유대교는 동일하게 흩어졌다. 초대교회 역시 예루살렘 본교회는 상징성만 남았고, 안디옥 교회가 주도권을 잡았다.
유대교에서 얌니아 회의가 매우 중요하다. 그때를 기점으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둘로 쪼개졌다. 유대인들의 얌니야 회의가 있기 전에 기독교는 유대교에 속한 하나의 분파였다. 유대교를 개혁하기 위해 탄생한 종교가 초대교회였다. 예수님도 사명기간 동안 성전 내부를 정결하게 하고, 율법의 모순에 대해 과감하게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 성경해석에 문제가 있으니, 본질을 잃고 제도화된 종교권력을 향해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도록 “원점으로 회복”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묻혔고, 3일만에 부활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봤으나, 부활후에는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유대교는 구약성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했지만, 초대교회는 구약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유대교회는 초대교회를 저주하고,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기도문에 예수와 교회를 저주하는 문장을 넣었다. 얌니야 회의가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독립한 기점이다. 추방당함으로 독립한 것이다.
어쨌든, 교회는 유대교와 같지만 달랐다. 이스마엘과 이삭처럼, 교회는 유대교와 차이점을 가졌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안식일과 음식법을 지켰다. 초대교회도 유대교의 종교관습을 상속받으면서도 어떤 것은 변형해서 받아드렸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유대교 사상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해석을 놓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고,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2의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으며, 나아가 땅에 강림한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성전이 멸망하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동일하게 디아스포라의 흩어짐이 있었다. 이때 유대교는 지역사회에 있는 회당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묵상하면서 공동체 활동을 유지했는데, 회당에서 기독교와 번번히 충돌을 하자, 초대교회 전도자들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서서히 줄였고, 복음의 방향은 이방인으로 향하게 됐다. 유대교에서 출발한 기독교는 이방세계로 퍼지면서, 이방의 문화와 섞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로마제국으로 들어간 초대교회는 로마문화와 동화하면서, 유대교와는 다른 독특한 종교로 변화했다. 이방세계는 할례도 모르고, 유대교 전통사상도 없었다. 복음의 씨앗은 각 나라의 문화속에 전파되면서,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에 따라 복음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게 형성했다.
한국교회도 동일하다. 복음의 전통성을 주장하겠지만, 각 교파마다 다른 복음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교회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지도자들에 의해서 교회 스타일이 조금씩 달랐다. 가정마다 아버지의 성격이 어떠하냐에 따라 자녀들의 성격이 달라지듯이 교회도 지도자에 따라 달라졌다. 불교적 기독교, 유교적 기독교, 샤머니즘적 기독교 스타일로 각각 나타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유교적 기독교는 ‘예의범절’을 중심하는 제도적 기독교이고, 불교적 기독교는 ‘기복신앙’의 기독교이며, 샤머니즘적 기독교는 귀신을 쫓는 신유은사의 기독교를 뜻한다.
복음이 전파되면, 믿음으로 십자가를 고백할지라도 그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인간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남자의 뼈와 살로 여자가 만들어지듯이, 하나님은 각 사람의 본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재창조하신다. 그래서 본성의 뼈와 살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세례를 받으면, 갑자기 새로운 사람으로 바뀐다고 믿겠지만,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취급했으나, 세례를 받은 이후로는 의인으로 취급하시는 것이다. 인간은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은 관점을 다르게 하신다. 이것이 은혜다.
초대교회는 헬레니즘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헬레니즘을 알지 않고서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진리’는 ‘진리’로서 이해해야지, 어떻게 ‘문화적 관점’으로 예수님을 해석하려고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너무 모르는 소리다. 주님은 땅에 태어나 그 시대 관습과 문화를 익히셨고, 아람어로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 시대의 실존인물인 베드로와 마태와 요한을 직접 만나서 목회 사역을 3년동안 하시다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시고, 3일만에 실제로 부활해서 제자들과 함께 40일 동안 동거하셨다. 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뉴스이며, 이것은 실제 사건이다. 결코 가공된 SF소설이 아니다.
한국인은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적이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모든 문화속에 그대로 존재한다. 공자를 숭배하는 서원은 사라졌어도, 공자의 사상은 한국인의 문화속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불교사상도 동일하다. 그처럼 초대교회 시절에는 플라톤 사상이 매우 지배적이었고, 그 이론이 이분법으로 이원론이다. 이원론은 영주주의로 나타났고, 이들은 성육신한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플라톤의 이원론에서는 물질은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 그래서 영주주의에 심취한 자들은 우주를 창조한 창세기 하나님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이 땅에 태어난 예수님도 믿지 않았다. 성경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제퍼슨 성경도 비슷하다. 그는 합리적인 이성주의자로서 8개국어에 능통한 천재였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을 때 ‘기적들’이 너무 많아서 불편했다. 제퍼슨은 자신의 성경에서 ‘기적’이 들어있는 사건들을 모두 잘라내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식들로만 구성된 성경을 가지고 다녔다. 그가 죽고, 그의 성경이 발견되어서 출판됐는데, 그게 제퍼슨 성경이다. 성경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을 위해 성경을 바꿀 것인가? 성경을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바꿀 것인가? 두 가지 문제는 인간이 겪는 근본적인 갈등이다.
기독교에는 2가지 부류가 존재한다. 영지주의 즉 플라톤 사상에 심취한 부류, 유대교에 심취한 부류다. 유대교를 중심하면, 예수님을 인간으로 인식한다. 왜냐면 창조주 하나님은 유일신이니,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권이 될 수 없다. 영지주의에 심취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만, 성육신한 예수님은 부정한다. 즉, 영혼으로서 예수님만 인정한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터졌다. 바울의 편지에 따르면, 베드로파 아볼로파 바울파 등이 교회 안에서 싸웠다. 같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지도자에 따라 팬클럽이 생긴 것이다.
교회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교회 밖과 안은 평온한 날이 거의 없었다. 정치적 박해 뿐만 아니라 이단논쟁이 교회를 공격했고, 교회 내부에도 성도들끼리 갈등이 있었다. 모든 분쟁의 핵심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였다. 창조주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했으나, 예수님에 관한 견해가 첨예하게 달랐다. 교회에 들어오는 새신자를 교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칠 몇가지 규칙을 정했고, 세례를 받을 때 그 규칙들을 암송하면서 마음으로 고백하도록 요구했다. 신앙의 규칙이 곧 하나님의 편이 되는 핵심 암호였다. 그 규칙들이 훗날 사도신경으로 완성됐다. 사도신경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시작하고 성령 하나님으로 끝난다. 그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부활과 재림이 있다.
신학적 논쟁은 교회에 계급구조를 형성했다. 이단의 공격 때문에 교회를 지키고 교리를 집대성하는 부류가 갈수록 중요해졌고, 교회 살림을 전문적으로 챙기는 공동체가 구별되기 시작했다. 초대교회는 사도와 교사와 예언자와 전도자와 새신자가 모두 동등권을 가졌고, 평등했다. 어떤 차별도 없었다. 그러나, 사도들이 죽고, 제도화된 교회는 보다 중요한 직분과 덜 중요한 직분으로 나뉘어졌고, 교회 살림을 전적으로 맡은 부류는 집사와 장로가 되었다. 장로 중에서 더 높은 계급이 주교와 감독이 되었고, 주교중에서 더 높은 계급이 교황이 되었다. 종교귀족이 생긴 것이다.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분도 교회안에서 계급이다.
누가 높고 누가 낮은지, 예수님은 “높은 자는 섬길 것이고, 낮은 자는 섬김을 받는다”고 했는데, 계급구조는 “높은 자는 섬김을 받는다”를 뜻한다. 계급이 생기면, 평등은 깨진다. 심지어 안디옥 교회 감독인 이그나티우스는 “감독이 참석하지 않는 성찬식은 그 효력이 없다”라고 말했고, 이후 교회는 감독이 있어야만 성찬식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엄격해졌다.
계급화의 위험성은 교회의 머리를 ‘성직자’로 오해하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직자가 평신도보다 높게 되면, 성직자는 하나님의 대신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게 된다. 결국, 이러한 논리때문에 이단의 교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고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는 폐단을 낳게 됐다. 계급이 있는 곳에는 평등이 없고, 평등이 없는 곳에는 자유도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도 없다. 이단교회든, 일반교회든, 계급이 있으면 초대교회 정신이 실종된 것이다.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요, 성도는 각각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다. 공동체로서 교회가 어린양의 신부이듯, 각 성도도 어린양의 신부다. 계급으로서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한다면, 공동체는 스스로 분쟁하는 꼴이 된다.
교회의 태초는 항구다. 항구가 교회의 배꼽이며 탯줄이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대서양을 통한 바다길이 열리고, 그때부터 정복자들의 항해를 통해 복음이 전파됐다. 로마제국을 통해 유럽은 천주교를 국교로 믿었고, 네스토리우스 후예들은 중앙아시아로 진출해 중국까지 기독교가 확장됐다. 기독교 인구는 중앙아시아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세워졌고, 몽골에서 파생된 칸의 후예들이 이슬람 제국을 세우면서 네스토리우스 후예들은 전멸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정치적 이유는 ‘간헐적 박해’였기 때문이다. 반면, 칸의 후예들은 기독교를 조직적으로 전멸시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기독교는 박해받는 종교에서 대접받는 종교로, 결국에는 박해하는 종교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