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은 ‘서울교육방송 선정 교육우수도서’에 <반고흐 인생수업>(이동섭 작가, 아트북스)을 선정하였다. 해당 도서에 대한 추천 심사평은 아래와 같다. 이 책은 미술도서로서 반고흐와 작가 이동섭과 독자의 3가지 관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예술을 쉽게 풀어낸 이야기로서, 예술교육에 매우 적합해, 교육우수도서로 선정하였다. / 서울교육방송 교육우수도서 선정위원회
[박근영 심사위원]=2008년 여름, 나는 현재시점까지의 삶을 기준으로 가장 예술적으로 충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그 곳. 런던에서. 왜 내가 런던에 당도(當到)하게 되었는지 물어본다면, 그저 그 나이 때에 걸맞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다. 어쨌든 우리 부모님이 ‘오냐, 잘 다녀오거라.’ 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큼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했으니 고이 기른 외동딸을 생면부지(生面不知) 땅에 보내준 부모님의 대범함과 은혜에 지금도 감사하다.
돌이켜보면 매 일, 매 시간, 매 분, 매 초. 머무는 내내 그 곳의 회색(灰色) 공기마저 다 빨아버리겠다는 듯 나의 온 감각은 촉수(觸手)처럼 솟아 있었다. 시내 한 복판 곰팡이 쓴 지하 우리집은 비록 어마어마한 렌트비로 충격과 놀라움을 선사했지만, 당시 런던에서 가장 힙한 젊은이들, 펍, 레스토랑, 공연들의 파노라마를 접할 수 있는 접점이었기에 심장마비(心臟痲痺)만 오지 않는다면 괜찮았다. 수업을 마치고 Eat 이나 Pret A Manger 같은 곳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한 뒤 집 근처 대영박물관이나 소호의 갤러리, 마켓 등을 몇 시간씩 돌며 느낌, 냄새, 이미지, 공기까지 나는 정말 런던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파리로 향하게 되었고, 당연히 오르세 미술관에 갔으며, 고흐를 만났다. 나에게는 그다지 감흥 없는 우울(憂鬱)한 그림을 그렸던 이상한 귀 잘린 – 정확히 말하면 자른 – 남자. 괴짜 고흐지만 작품 이름 하난 기가 막히게 짓는 것 같았다.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마주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이름 그대로 빛이 났고 오르세의 웅장함은 노란 별빛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구의 인생에나 다양한 전환점이 있지만, 나에겐 별이 빛나는 밤을 본 그 순간이 전환점이었다. 어두웠던 가슴 한 귀퉁이에 별빛이 탁 켜졌고, 그 뒤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어쨌든 고흐는 그렇게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남자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위키피디아 검색창에 나오는 실연당하고, 귀를 자르고, 괴팍스러운 사람이라는 희뿌연 이미지 뿐이었기에 ‘반 고흐 인생수업’ 이라는 책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어쩌면 진짜 인간 고흐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책의 프롤로그에 적힌 ‘빈센트의 삶에 내 청춘을 비춰보다’라는 문구는 몇 년 전 런던과 파리를 헤매던 내 모습을 상기시켰다. 작가 이동섭씨는 청춘의 고민과 헤맴을 갈무리하며, ‘이 책을 썼다’라고 했고, 난 동지(同志)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책은 기본적으로 고흐라는 사람의 인생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 흐름의 어떤 시점에서 고흐라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소개된 작품들은 고흐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고흐의 처진 눈, 길게 뻗은 코, 하나 뿐인 귀가 작품마다 하나씩 낙인처럼 찍혀 있는 것 같다. 빼도 박도 못하게 고흐의 것임을 나타내는 듯.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음은 작가의 빼어난 관점 때문이다. 작가는 철저히 고흐의 입장에서 또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주관적인 본인의 시선에서 큐브 놀이하듯 이렇게 저렇게 돌려가며 고흐의 인생을 조립해 놓았다. 그리고 조립의 끝에는 똑같은 색깔의 면이 아닌 고흐의 작품이 있다.
또, 작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큐브 사이사이에 끼워 놓으며, 독자들의 이야기도 넣을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주기도 한다. 해서 읽는 내내 나와 고흐와 작가 이동섭씨의 이야기를 비교하게 되는 시공간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되고, 이 과정이 상당히 재밌다. 그런데 이런 재미를 느끼려면 독자 역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할 터이니 나처럼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청춘을 보낸 또는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훨씬 재미있게 다가갈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책의 목차를 보면 연애, 콤플렉스, 자아, 자립, 행복, 직업, 우정과 같은 주제들을 빈센트의 인생사, 작품을 통해 다루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주제에 대해 고민해 본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적 내용이다.
고흐라는 인간을 이해하게 되며 느끼는 연민, 공감, 동질감, 나 자신에 대한 탐구의 경험 외에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이 매우, 상당히 쉽다는 점이다. 몇몇 고고한 예술책처럼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감성과 더욱 암호같은 해석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책은 절대 아니기에 아주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고 나는 그것 또한 작가 특유의 분위기나 공감능력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쉽다고 해서 해석의 깊이가 부족하다거나 뭔가 겉도는 느낌이 아니라 상당히 담담하고 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작가 소개란을 보면, 이동섭씨는 다양한 분야에서 조예가 깊다. 예술인문학자라는 직함을 달고 광고홍보학, 현대무용, 비디오아트, 뮤지컬, 영화, 패션 등을 공부했고 그러한 복합적 경험과 지식을 살살 간지럽히듯 그리고 질서정연하게 말하듯 풀어내는 것 같다. 예술작품을 재료 삼아 인문학을 쉽고 재밌게 알리는 한편,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계시다니 그의 강의에 한 번 참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어쩌면 작가는 고흐의 인생을 매개로 작가 본인의 인생과 수 많은 독자의 인생을 교차하는 걷기 쉬운 오솔길을 열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저자 이동섭은 예술인문학자.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졸업 후, 파리로 유학을 갔다. 파리 제8대학 사진학과, 조형예술학부 석사(현대무용), 박사 준비과정(비디오아트), 박사(예술과 공연미학)를 마쳤다. 그림과 음악, 영화와 패션 등에 걸쳐 폭넓게 공부하고 일했다. 지금은 방송과 신문에서 예술작품으로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한편, 대학에서는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 『반고흐 인생수업』 『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당신에게 러브레터』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뮤지컬 토크 2.0』 『뮤지컬의 이해』등을 쓰고, 『파리스케치북』과『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번역『유럽장인들의 아틀리에』의 사진을 찍었다. 예술이 경쟁에 지친 일상에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