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요즘 정말 밤낮 없이 일하고 있다. 새벽 두 세 시쯤 되면 최근 한창 협업하고 있는 영국, 독일 등지에서 들어오는 메일과 전화에 답하느라 거진 뜬 눈으로 밤을 샌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아침에 출근해 노트북을 열면 무섭게 쌓여 있는 또 다른 업무들. 이러다 지문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키보드 위를 아둥바둥 오고 가며,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빠질 것 같은 눈과 잔뜩 화(火)나 단단히 부풀어 오른 어깨, 저릿한 손이 적색경보(赤色警報)를 요란하게 울린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지?’ 얼빠진 얼굴로 궁시렁 대며, 밖을 내다보면 구름과자가 잔뜩 모여있는 여의도 거리거리가 보인다. 얼굴도 양복도 무채색(無彩色)인 직장인 무리가 여의도 전체를 잿빛으로 만들겠다는 듯한 기세로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저기에 또 다른 동지가 있구나 못된 안도감이 나를 위로한다.
단속반들도 이런 직장인들의 속사정을 알아서, 거리 흡연 단속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살기등등한 이 곳, 증권가 골목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다. 괜히 들쑤셔서 좋을 곳이 아니다. 암묵적인 협의랄까.
아. 스트레스.
부처의 자비, 예수의 사랑만큼 경지에 오르지 않은 범인(凡人)들이라면 평생 따라다닐 애증(愛憎)의 스트레스. 우리는 매일 이 녀석과 씨름하고 있다. 이런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마포대교의 위로 문구에도 불구하고 삶을 뒤로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극심하고 무서운 건지 알 수 있다.
나 역시도 한때는 잔병치레로 병원을 들락날락 거리며,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푹 쉬세요.” 라는 황당무계한 의사들의 처방에 분노하던 때가 있었다. 지인 중에 하나는 서른도 안됐는데 머리가 빠지고, 급기야 회사를 그만두고 요양(療養)하던 이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덜컥 두려운 마음에 지어 먹은 보약 봉투를 쭉쭉 빨며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방법을 바꿨다. 10년 넘게 다니다 입사와 함께 데면데면 하게 된 집 근처 헬스장에 다시 등록하고, 주말 하루는 공방(工房)으로 직행했다.
남 신경 안 쓰고 땀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런닝머신 위를 달렸고, 딱 그 날 받은 스트레스만큼의 강도(强度)로 운동했다. 손끝의 붓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생각 하지 않아도 되는 공방에서는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스트레스를 삶의 에너지로 바꾸기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거쳤지만 그렇게 몇 해가 지났고, 이제는 제법 현명하게 스트레스를 활용하게 된 것 같다. 오히려 한 주를 빡빡하게 보내지 않으면 운동도 덜하게 되고 그림 작업도 시큰둥해지니 이제는 좀 고마운 존재가 되기도.
직업은 다 다르지만 어느덧 선임이 된 직장인 대학 친구들과 몇 달 전 만남에서 여지없이 또 서로의 고충에 대해 한탄하고 위로하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연히 읽은 잡지에서 인생 최고의 몸을 만드는 게 20-30대의 과업 중 하나라는 글을 읽고 굉장히 동감했다고. 그리고 스트레스 덕분에 죽기살기로 운동을 했더니 최근 건강검진 결과 인생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주 후, 그녀들은 각각 플라잉 요가(瑜伽)와 필라테스를 등록했다며 카톡을 보내 왔고 지난 주 만남에서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들을 토로하고는 있지만 훨씬 생기 넘치고 예뻐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자기 투자(投資)와 삶의 에너지로 바꾼 그녀들은 진심으로 멋지고, 예뻤다.
그럼 스트레스. 너란 녀석.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모두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